“각 분야 엘리트들만 모였는데, 이상하게 전문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검찰, 북한, 일본 전문가가 없으니 참모들은 대통령만 바라본다. 대통령 혼자서 사안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판단해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됐다.”
6일 한 여권 관계자는 최근 청와대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촉발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 악화일로인 남북 관계과 북·미 관계, 수면 위로 드러난 청와대와 검찰 갈등을 비롯해 청와대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노련하게 부처와 소통하며 이슈를 장악하고, 다양한 사전 시나리오를 검토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한편 현안에 대한 빠른 보고와 의사소통이 이뤄져야 하는데 모든 게 막혀 있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평가다. 이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부처 개각 뿐 아니라 대대적인 청와대 내부 개편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새로운 인사들과 함께 집권 중반기 살림을 꾸려야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6일 현재 비서관 49명 가운데 검찰 출신 인사는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유일하다. 박 비서관은 지난 7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한 이후 조국 사태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윤 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향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이어가는 와중에 검찰과 청와대를 잇는 박 비서관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조 전 장관의 거취를 두고 참모들 대부분은 침묵했고, 문 대통령이 거의 혼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직접 평가해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올바른 ‘레퍼런스(참고)‘를 대통령에게 전하는 참모가 거의 없다는 게 여권 관계자 다수의 증언이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검찰의 독립 수사를 보장하겠다고 한 만큼, 청와대가 검찰의 수사를 막거나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검찰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건지 파악이 되어야 하는데 전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변칙복서’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로 불리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도 윤 총장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청와대의 현실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비서관은 현재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검찰이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며 청와대를 겨냥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관련 수사의 폭을 넓히고 있지만 청와대 내 검찰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비어있는 것이다. 박 비서관 후임 찾기도 난항이 예상된다. 실제로 김태우, 조국 사태를 겪으며 검찰 출신 인사들 사이에선 ‘반부패비서관 자리는 잘해봤자 본전이고, 잘못하면 모든게 끝장난다’는 우려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내 ‘검찰통’의 공백 상태가 장기화 되면 청와대가 검찰에 항상 끌려다니는 민망한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에 접어든 것도 전문가의 부재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현재 국정원-노동당 통일전선부 라인은 거의 끊긴 상태라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북한은 오랜기간 접촉한 사람을 신뢰한다. 아직도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찾는다”며 “그나마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제외하면 청와내 내에서 북한을 잘 아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임 전 실장은 과감하고 적극적인 대북 정책을 끊임없이 문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그 결과 지난해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이어진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나면서 북한은 우리 정부를 제치고 미국과 직접 비핵화와 이에 대한 상응조치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럴 때일수록 청와대와 정부 인사가 물밑에서 북한과 접촉해 연말 시한 전까지 뭔가 합의안을 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아무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오죽했으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연철 현 장관에 대해 “축사만 다닐일이 아니다. 통일부가 일이 없고, 존재감이 없다”며 “통일부가 이럴 때가 아니다. 일을 저질러야 한다”고 비판했다. 다년간 북한과 접촉해 그들의 속내를 아는 청와대 인사가 통일부에 적극적인 역할을 맡기고, 주문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일 외교 문제는 더 심각하다. 국익을 고려한 공격적인 자세도 중요하지만, 지소미아 너머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물밑 해법 논의가 훨씬 더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배제-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미국 정부의 반발-지소미아 종료 유예의 과정에서 우리 측이 세련되고 능수능란한 외교 정책을 쓰지 못했다는 비판이 크다.
한 외교 소식통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외교부와 청와대에 일본통이 거의 없다”며 “지난 7~8년 사이 주일대사가 6명이나 바뀌었다. 대일 외교를 홀대하니 이런 사태가 터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유년기 일본에서 겪은 ‘트라우마’를 대일 정책에 반영하는 것 같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결국 문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청와대 조직을 대폭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각 분야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지는 참모를 능력있고, ’할 말은 하는’ 인사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총선 시즌이 다가오면서 이미 청와대에서 마음이 떠난 비서관과 행정관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안다”며 “개각보다도 청와대 개편이 훨씬 더 큰 쇄신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