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체 부시장 수난시대’…부산·울산·광주 넘버2 잇따라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입력 2019-12-06 13:24 수정 2019-12-06 13:38

광역 자치단체 부시장들이 유례를 찾기 힘든 수난시대를 겪고 있다. 과거에는 단체장의 그림자처럼 조용히 ‘2인자’ 노릇을 하던 부시장들이 권력형 대형사건에 연루돼 잇따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직선 단체장의 권위와 위계질서에 눌려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해온 부시장들이 청와대 하명사건 논란, 감찰 무마 의혹, 민간공원 특례사업에 얽혀 인생 최대의 봉변을 치르고 있다.

과거 정치인 등이 정무부시장 경력을 쌓아 부시장 직함이 ‘여의도 입성을 위한 징검다리’라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현재 양상은 다르다.

행정고시 등 공무원 출신 부시장들이 자의반 타의반 ‘정국의 핵’으로 등장했다.

권력간극지수(PDI·Power Distance Index)가 무색한 부시장들의 행보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신문지상이나 TV뉴스에 이따금씩, 간헐적으로 나오던 ‘부시장’이라는 단어가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도 건드리기 힘든 ‘정권실세’였다는 의혹이 일부에서 불거지면서다.

유 전 부시장은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재직 장시 업체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편의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지난달 27일 구속됐다. 이후에도 그에 대한 청와대의 특별감찰 무마 의혹이 잇따르면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6일 오전 검찰이 자택과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은 송철호 울산시장과 얼마전까지 ‘송송커플’로 불리며 인생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검찰은 김 전 시장의 측근 비리 의혹을 청와대에 어떤 방식과 경로를 거쳐 제보했는지에 대해 송 부시장과 그 주변을 집중 수사 중이다.

송 부시장은 자유한국당 소속 박맹우, 김기현 전 울산시장 시절 교통건설국장 등을 역임한 교통전문가다. 2017년 8월부터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송철호 현 시장을 도왔다가 송 시장 취임 이후 이례적으로 3급 출신 전직 공무원에서 1급 부시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정종제 광주시 행정부시장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민간공원 특례사업에 직권을 남용한 혐의가 드러난 것도 모자라 검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불법으로 더불어민주당 당원을 모집한 정황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취임한 정 부시장은 검찰이 지난달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한숨을 돌렸지만 백척간두의 처지는 여전하다. 비록 쇠고랑을 차지는 않았지만 검찰의 수사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올해 말 명예로운 퇴임 이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던 정 부시장은 검찰수사가 본격화되자 ‘여의도’를 향한 자신의 꿈을 우여곡절 끝에 접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바람 앞에 촛불, 풍전등화 신세로 검찰의 영장 재청구 등 사법처리 여부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1급 행정공무원으로서 자존심도 이미 뭉개졌다.

광주시공무원 노조는 지난 4일 ‘정 부시장을 업무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정 부시장은 광주 민간공원 특례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우선협상대상자가 교체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부군수·부시장·부지사 등 부단체장(부기관장) 직제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 읍·면 단위 지방자치 폐지, 지방의회 해산과 더불어 폐지됐다.

이후 지방자치 이념을 되살리기 위해 5·16 당시 제정된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과 지방자치법을 1963년 개정하면서 전격 부활됐다.

1985년 전체 군 단위까지 부군수 직제가 신설된 데 이어 1995년 자치단체장 직선제 도입과 함께 행정공무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한동안 ‘옥중결재’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민선단체장이 신병상의 이유로 궐석이거나 또는 구속됐을 때는 ‘직무대리’ ‘권한대행’으로서 단체장 버금가는 막강한 지방권력을 행사한 전례도 많았다.

부단체장은 대부분 인구를 기준으로 직급을 정하는 게 관례로 지켜지고 있다.

시·도 광역단체를 기준으로 보면 행정을 총괄하는 행정부시장과 시민사회·의회·언론을 주로 담당하는 정무부시장 2명이 역할을 분담해왔다.

2010년대 들어 광역단체장들은 ‘균형발전 부시장’ ‘문화경제부시장’ ‘평화부지사’ ‘문화예술부시장’ ‘연정부지사’ 등으로 과거 정무부시장 직함을 떼고 지역특색과 권력지형에 맞춰 부단체장을 임용하고 있다.

1994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부시장을 3인까지 둘 수 있다.

광주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방행정의 전문화를 위해 부단체장의 역할과 권한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는 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부시장 등 부기관장의 업무배분과 기능이 오락가락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