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렴치한 전두환 & 사죄나선 노태우‘…5·18민주화운동에 극명한 온도차이

입력 2019-12-06 11:10 수정 2019-12-08 10:32

‘몰염치한 전두환 & 5·18 달래는 노태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53)씨가 지난 5일 올 들어 두 번째 광주를 찾아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사죄했다.

지난 8월에 이어 3개월여 만이다. 당시 재헌씨의 5·18민주묘지 참배는 권력에 눈멀어 군화로 광주를 짓밟았던 신군부 핵심세력의 첫 사죄라는 평가를 받았다. 과거를 참회하고 반성한다는 점에서 국민적 주목을 끌었다.

전씨와 함께 쌍두마차로 신군부 세력을 형성한 노 전 대통령.

육군 ‘하나회’의 주축으로 5·18 무력진압에 공을 세웠다가 이후 전씨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그가 자신의 아들을 통해 최초로 희생자 묘역을 참배했기 때문이다. 5·18민주묘지에는 5·18 희생자들이 안장돼 있다.

광주 오월어머니집은 “재헌씨가 5일 오후 2시쯤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 등 일행 3~4명과 함께 찾아와 30여분간 얘기를 나눴다”고 6일 밝혔다.

5·18 무력진압을 주도했던 노씨의 아들이 5·18민주묘지 참배에 이어 희생자 유족들을 만난 것이다.

재헌씨는 사전 연락없이 오월어머니집을 방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헌씨는 유가족들에게 “5·18 당시 광주시민과 유가족이 겪었을 아픔에 공감한다. 아버지께서 직접 광주의 비극에 대해 유감을 표현해야 하는데 병석에 계셔 여의치 않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아버지를 대신해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 찾아왔다. 광주의 아픔이 치유되길 기원한다”는 뜻을 전했다.

유가족들은 “방문한 취지는 이해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고백해야 한다”며 완곡하게 ‘5·18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유가족들은 “자나깨나 5·18 진상규명을 바라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진상규명 활동에 적극 협력해야 사죄의 진정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재헌씨는 지난 8월23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5·18 민주묘지를 사전 연락없이 찾아 참배했다.

그는 윤상원, 박관현 열사의 묘역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대신해 참회했다.

방명록에는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의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깊이 새기겠습니다’고 적었다.

당시 재헌씨의 참배는 암과 폐렴 등으로 자택에서 투병 중인 아버지 노씨의 권유에 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씨는 병환을 앓으면서 ‘5·18묘지에 다녀와야 한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고 한다.

노씨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1988년 2월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 묻힌 이한열 열사 묘역 등을 참배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기도 했다.

반면 노씨에 앞서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달 7일 후안무치한 골프투어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회고록에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씨는 ‘치매’를 이유로 법정 출석은 거부하면서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골프를 즐겼다.

전씨는 당시 정의장 부대표이자 서울 서대문구의회 의원 임한솔씨가 5·18학살 책임을 묻자 “광주학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발포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그동안 5·18관련 국회 청문회나 검찰수사 결과와 동떨어진 답변을 했다.

1000억원이 넘는 추징금을 납부하라는 주문에는 “네가 좀 대신 내주라” “너 명함 있냐”고 생뚱맞게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치매’ 논란 속에도 종종 골프장에 모습을 보여왔다.

전씨와 노씨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0·26사태로 ‘권력의 공백’이 발생하자 12·12 쿠데타를 일으켰다.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으로 정권 찬탈의 기회를 엿보던 전씨와 노씨는 5·18 무력진압을 주도한 신군부 주요 지휘부였다. 나중에는 대통령 권좌를 주고 받기도 했고 5·18 재판에서 법정에 나란히 서기도 했다.

다른 점은 주범격인 전씨는 40년이 다되도록 여전히 궤변과 인면수심의 행동으로 아직도 5·18을 왜곡하고 있는 데 비해 노씨는 늦게나마 아들 등을 광주에 보내 직간접적으로 ‘사죄’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시민들은 두 사람의 행보가 대조적이라는 반응이다.

전씨는 퇴임 이후 30년 동안 핍박을 받으면서도 하지 못한 ‘백담사 769일간’의 사연 등을 담았다며 지난 2017년 4월 회고록을 출간했지만 그로 인해 다시 법정에 서서 지금도 국민적 심판을 받는 신세다.

광주 지역사회에서는 “천인공노할 계엄군의 만행에 대해 전씨와 노씨가 진실을 직접 규명하고 머리 숙여 희생자와 부상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며 “생전에 용서받을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