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5·18 증언자에 ‘군 장비 모른다’며 분노… 맞고소 지시”

입력 2019-12-05 17:37
연합뉴스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검찰 조사가 이뤄지던 1995년 당시 전두환(88) 전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담긴 군 문건이 공개됐다. 고(故)아널드 피터슨 목사가 계엄군의 헬기 사격 사실을 증언하자 이에 격분해 맞고소를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최경환 대안신당 의원은 5일 오전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보안사가 생산·보유하고 있다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한 문서와 자료 등 총 2321건이다. 이 중 1995년 5월 18일 작성된 ‘피터슨 목사 검찰 증언 관련 방향’ 문건에 담긴 이 내용은 그때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당시 검찰은 1995년 11월 30일 ‘12·12 및 5·18 특별수사부’를 설치하고 두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에 착수했다. 문건에는 “전 전 대통령은 최근 5·18 조사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심기를 표출해왔다”고 돼 있다. 그러던 중 피터슨 목사가 한국을 찾아 “5·18 당시 헬기에서 사격한 증거가 있다”며 촬영한 헬기를 공개하고 검찰에 출석해 증언했다.

보안사 작성 5·18 관련 문건. 연합뉴스

피터슨 목사는 1976년부터 1981년까지 광주에 머물며 선교 활동을 한 미국인 목사다. 1989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5·18 당시 목격담과 헬기 사격을 증언했다. 1995년에는 매일 자필로 기록한 일기를 엮어 증언록을 펴내 5·18 비극을 고발하기도 했다.

문건에 따르면 피터슨 목사의 등장에 전 전 대통령은 매우 격분했다. 이어 한 측근에게 “군 장비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횡설수설하고 있다”며 “당시 항공감이었던 배모 예비역 준장을 찾아 대응책을 강구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5·18 관련 증언과 동향을 파악하고 반박할 방법을 찾으라고 명령한 것이다.

실제로 이 지시에 당시 헬기 조종사들을 중심으로 맞고소 방안이 마련돼 추진되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배 준장이 만난 조종사들이 “우리가 살인마란 말이냐”며 분개했다는 내용도 문건에 적혀있다.

골프를 즐기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모습. 연합뉴스

또 전 전 대통령이 골프를 치던 안모 경호실장을 연희동 자택으로 긴급호출해 대책을 논의했다는 부분도 있다. 검찰이 피터슨 목사의 증언을 인정할 경우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신군부가 5·18 피해자와 검찰, 정치인 등 관련자를 모두 불러 실제 헬기 사격 시범을 보이는 방안을 검토한 것도 확인됐다. 재판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실제 기총소사 시연 방안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문건에는 “5·18 관련자들을 모두 소집 동일 기종의 헬기에 무장을 하고 실제 기총소사를 시범 보임으로써 헬기에서의 기총 사격이 얼마나 무섭고 피해자 큰지를 인식시켜 피터슨 목사 스스로 착각을 시인토록 하는 방안도 검토했다”고 쓰여있다.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5·18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 중이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며 줄곧 재판에는 불출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건강한 모습으로 골프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대중의 공분을 샀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