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해외 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를 팔아 대규모 원금 손실사태를 빚은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에 투자 손실액의 40~80%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80%’는 역대 분쟁조정 사례 가운데 가장 높은 배상비율이다. 금감원은 배상비율을 결정하는 데 은행 본점의 과도한 영업 행태, 부실한 내부통제 과실을 처음으로 반영했다.
분쟁조정 당사자가 이번 결정을 받아들이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이를 따르지 않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분조위 결정(배상 비율)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5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분조위를 열고 DLF 상품에 투자해 원금 손실을 입은 사례 6건을 회부했다. 분조위는 “모두 불완전 판매”라고 판단했다. 기본 배상비율(30%)을 설정하고 은행의 내부통제 부실 책임(20%) 등을 더한 뒤에 각 투자자의 연령·투자경험에 따라 조정했다. 김상대 금감원 분쟁조정2국장은 “은행의 책임 가중 사유와 투자자의 자기책임 사유를 감안해 최종 배상비율이 산정됐다”고 설명했다.
가장 높은 배상 비율(80%)이 적용된 사례는 투자경험이 없고 난청·치매를 겪는 79세 투자자다. 우리은행은 이 투자자의 투자 성향을 ‘적극 투자형’으로 임의 작성했다. 가족 등 조력자의 도움 여부를 묻는 항목에는 ‘거절’로 표기했다. 김 국장은 “연령과 건강 상태, 투자경험 등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과거 최대 배상비율은 2008년 이른바 ‘오일펀드’ 사태 때의 70%였다.
또 분조위는 투자경험이 없는 60대 주부에게 ‘손실 확률 0%’를 강조하며 DLF 상품을 판 사례에 대해 75%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정기예금 상품을 찾는 고객에게 DLF 상품을 권유하고, 기초자산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사례에도 65% 배상비율을 매겼다.
이번 분조위에 회부되지 않은 DLF 분쟁조정 신청 사례는 은행과 투자자가 배상비율 기준에 따라 자율 조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다시 조정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지난달 말까지 금감원에 접수된 DLF 분쟁조정 신청은 모두 276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만기 상환이나 중도 환매로 손실이 확정된 사례는 210건(분조위 회부 6건 포함)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배상비율이 달라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분조위는 “현재 진행 중인 DLF 관련 수사 결과에 따라 조정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결정문에 명시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경영진 등은 현재 서울남부지검에 사기 판매 혐의로 고소·고발된 상태다. 금감원은 이르면 연내에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제재 수위를 결정한다.
한편 키코(KIKO·환헤지 통화옵션상품) 분쟁조정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금감원은 오는 12일 키코 손해배상 관련 분조위를 연다. 2008년 키코 사태가 불거진 지 약 11년 만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