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사람이 있다. 일상의 영웅, 소방관들을 찾아가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꼭 필요한 것들을 찾아내주는 사람들이다. 2017년부터 올해까지 꼬박 3년 동안 ‘소방관들의 친구’가 돼준 두 사람은 이베이코리아 소셜임팩트팀 홍윤희 이사와 원종건 매니저다.
두 사람은 2017년부터 진행된 이베이코리아의 ‘히어히어로’(Here Hero)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주로 원 매니저가 전국 각지의 열악한 소방 현장을 방문하고, 두 사람이 함께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각 소방 현장의 ‘빈 틈’을 메워줬다. ‘발로 뛰는’ 사회공헌을 실천하고 있는 홍 이사와 원 매니저를 4일 서울 강남구 이베이코리아 본사에서 만났다.
우리 곁의 영웅(here hero), 영웅의 말을 듣다(hear hero)
‘히어히어로’ 캠페인의 특별한 점은 현장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직접 찾아가 발굴해서 지원한다는 점이다. ‘받는 사람이 받고 싶어 하는 것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건 쉬운 듯 어렵다. 상대의 필요를 알려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막연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받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가장 쉬운 건 직접 물어보는 거다. 그러려면 현장을 방문해야 한다.
원 매니저는 기꺼이 발품을 팔겠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먼저 청해서 이뤄진 일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면서 소방 현장에 ‘두 번 방문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어요. 한 번은 어떤 게 필요한지 알아보기 위해, 한 번은 필요한 걸 드리기 위해서요.”
원 매니저는 왜 그랬을까. 어쩌면 사서 고생인 일을 자처한 것은 왜 일까. 그는 개인적인 경험을 꺼냈다. 어머니가 장애인이라 사회복지 수혜자의 경험이 있었던 그는 받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알았다.
“수혜자로서의 삶이 길었어요. 받는 경험이 많았는데요. 그런데 받을 때도, 주는 사람이 고민을 하고 줬는지 아닌지가 느껴지는 거예요. 예를 들어, 지금 김장철이잖아요. 김장 봉사를 많이 하시고 김치를 주세요. 그런데 다 배추김치예요. 한국 사람들이 다양한 김치를 먹는데 왜 항상 배추김치일까 싶더라고요. 물론 김치 맛은 다 다릅니다.(웃음)”
원 매니저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받는 사람의 마음을 기꺼이 헤아려보기로 했다. 전국의 오지를 다녀야 하는 일이기에 녹록치 않을 거라는 것쯤은 각오했다. 그렇게 ‘히어히어로’ 캠페인을 개시한 2017년 초, 그는 대관령에 고립됐다.
오도 가도 못하고 대관령에 갇혔는데, 그의 곁에는 히어로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히어, 히어로’(here, hero)였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 어려움을 직접 겪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필요가 뭔지. 막연했던 아이디어는 확신이 됐다. 그렇게 3년을 전국 오지의 소방서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그는 강원도 대관령, 제주도, 경북 울릉도, 충북 충주호, 경남 양산 등 열악한 지방 소방본부를 직접 찾아가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듣고(hear hero) 지역마다 다른 ‘필요’를 찾아냈다. 구조용 드론, 신발 건조기, 방진마스크 소독기, 계단을 내려갈 수 있는 피난용 휠체어, 방진복 건조기 등이 적재적소에 전달됐다.
원 매니저는 “저희 캠페인 ‘히어히어로’를 소방관님들은 ‘히어’(hear) 히어로라고 말씀하신다”며 “소방관의 이야기를 듣고, 들은 이야기가 반영돼 돌아오다보니 그렇게 해석해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험이 빚어낸 디테일, 피난용 휠체어
지난 4월 강원도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이베이코리아는 1억5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했다. 방진마스크를 씻어 줄 수 있는 소독기와 계단을 내려갈 수 있는 휠체어 등을 기증했는데 현장에서 꼭 필요한 물품들이 전해졌다. 계단을 내려갈 수 있는 휠체어는 언뜻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는다. 이 피난용 휠체어 지원은 홍 이사 아이디어였다.
“휠체어 바퀴가 탱크 바퀴처럼 생겼어요. 계단을 주르륵, 편하고도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습니다. 제 아이가 휠체어를 타거든요. 그래서 장애 이슈에 관심이 많아요. 이베이코리아가 운영하는 옥션에 ‘케어플러스’라고 장애용품 쇼핑몰도 있고요. 그 둘을 연결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피난용 휠체어를 떠올렸어요. 소셜 벤처에서 만든 건데 실제 구호활동 하는 단체를 수소문해서 필요한지 물었고, 정말 필요하다고 해서 26대를 지원했어요.”
지원만하고 끝내지 않았다. 정말 필요한지에 대해 꼼꼼히 살피는 것도 소셜 임팩트의 업무다. 4월에 강원도 고성군의 장애인 거주 시설, 노인 병원, 특수학교 등에 지원하고 6월에 실제 어떻게 씅는지를 확인했다. 소방훈련을 할 때 피난용 휠체어의 효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학교나 공공 기관에서 소방훈련을 할 때 장애인들은 방치가 돼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거예요. 사실 방법도 없고. 그런데 이렇게 쓸 수 있는 제품이 있고, 이게 필요한 현장에 배치될 수도 있다는 걸 저희도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경험하고 있어요.”
이렇게 많은 아이디어들이 소방 현장에서 뿐 아니라 두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원 매니저는 어머니가 장애인이고 홍 이사는 아이가 소아암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수혜자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만큼 히어히어로 캠페인도 세심하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
“소방관이 족구하면 논다고 욕먹습니다”
우리 곁의 영웅들에게 ‘피난용 휠체어’도 유용하지만 ‘안마의자’도 필요했다. ‘구조용 드론’도 필요하지만 ‘신발 건조기’도 고마운 존재다. 소방관들이 누구나 원하는 지원 물품은 ‘신발 건조기’라고 한다. 통풍이 안 되고 두껍고 무거운 이 신발을 신고 일을 하다보면 발에 질병이 생기는 일이 많다고 한다. 자연 건조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신발 건조기의 유용함은 소방관들 사이에 널리 소문이 났다. 그렇다고 일괄 신발건조기만 지급할 수는 없어서 원하는 만큼 지원하지 못 할 때도 있었다.
히어히어로 캠페인은 소방관 가족을 ‘코믹콘’에 초청하거나 파라다이스호텔, 신라호텔 등과 함께 ‘호캉스’를 보내주기도 했다. 이런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소소하고도 평범한 호사스러움은 소방관들도 평범한 시민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홍 이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금세 수긍이 간다.
“수혜 대상들에게 흔히 씌여져 있는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무시무시한 소방 현장에서 심각한 일을 겪어야만 영웅시한다거나, 언제나 치열한 생존 다툼을 해야 한다거나. 소방관이 늘 그렇게만 지내는 건 아니잖아요. 그럴 수도 없고요. 소방관들이 소방서에서 족구를 하면 민원이 들어온대요. 소방공무원이 놀고 있다고. 운동을 해도 그렇고요. 소방관들에게 짊어지우는 부담이 너무 큰 것 같아서 좀 벗어나도 괜찮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소방관들에 대한 관심사가 높아지면서 소방관들의 처우도 좋아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영웅’ 프레임에 갇혀 부담도 커졌다. 홍 이사는 “(소방관 가족들은) ‘소방관이 컵라면 먹는 이미지’ 이런 것도 싫다고 했다. 희생의 아이콘처럼 그려지는 게 싫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서 소방관이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도 영웅적인 행위라는 것을 히어히어로팀은 담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 8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코믹콘’에 소방관 가족을 초청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진행됐다. 코믹콘에서는 코스프레가 익숙한 관람객들에게 방진복을 입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25㎏짜리 방진복을 입고, 뛰어야 하고, 힘을 써야 하고, 목숨을 살려야하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해서 공감의 폭을 넓혔다.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3년 동안 소방관들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해 온 만큼 기대와 우려를 함께 전했다. 홍 이사는 “앞으로 갈 길이 멀 것 같다. 새로운 문제점과 필요한 부분이 생겨날 것 같다”고 했다.
이베이코리아의 소셜 임팩트는 기업의 사회공헌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기존의 사회공헌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으로도 해석된다. 사회적인 변화는 갑작스레 나타나지 않는다. 나와 내 주변부터 서서히 바뀌고, 그 수가 점점 늘면 사회적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 홍 이사와 원 매니저는 그런 흐름을 타고 있다.
소셜 임팩트 팀의 히어히어로 사업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환경이 바뀐 만큼 지원 내용도 달라질 것이다. 원 매니저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굉장히 유연하게 움직인 조직이었고, 사업이었다. 앞으로도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응해 나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홍 이사는 두 가지를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하나는 히어히어로 캠페인은 지마켓과 옥션의 회원참여형 사회공헌기금 후원쇼핑, 나눔쇼핑 기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거다.
“저희와 함께 히어히어로 캠페인을 하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지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베이코리아가 취급하는 물품이 1억개가 넘고, 거의 모든 제조사와 유통사가 저희 오픈마켓에 들어와 있습니다. 누구든 좋으니 연락 주세요.”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