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세를 올릴까” 10개월째 머뭇거리는 정부

입력 2019-12-05 07:00 수정 2019-12-05 08:55
미세먼지 감축·세수 확보 일석이조 카드
현행 휘발유 대비 70% 수준인 경유세 인상
경유차 1000만 시대 이용자 반발이 핵심
유가보조금과의 형평성
‘경유세 인상 효과 미미’ 결론 용역보고서도 부담


겨울과 봄에 기승을 부리는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거론되는 ‘경유세(경유에 붙는 교통·에너지·환경세) 인상’을 두고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경기 악화로 내년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유세 인상은 미세먼지 감축, 세수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카드다. 지난 2월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도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휘발유와 경유 가격(휘발유의 80~90% 수준) 조정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열 달 가까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5일 “경유세 인상 문제는 종합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관련 제도와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개선해야지 단편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가 경유세 인상을 머뭇거리는 가장 큰 이유는 경유차 운전자들의 반발 우려다. 휘발유보다 저렴한 가격 탓에 국내 경유차는 최근 5년 새 크게 늘었다. 해마다 40만대씩 증가해 올해 들어 1000만대를 돌파했다. 전체 차량 100대 중 43대 꼴로 경유차다.

정부가 경유세를 인상하면 경유차 운전자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사업용 화물차에 지원해온 유가보조금을 폐지하지 않고, 경유세만 올리면 유가보조금을 받지 않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경유차 이용자들이 형평성 논란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경유세 인상은 오래 전부터 시민단체와 환경부를 중심으로 제기돼왔다. 환경부가 지난해 내놓은 미세먼지 배출원별 기여도 조사에서 경유차는 수도권의 미세먼지 배출원별 기여도 1위(26%)를 차지했다. 미세먼지를 구성하는 유해물질 중 하나인 질소산화물(NOx)의 ℓ당 배출량은 경유차가 휘발유차보다 8배 많다.

경유세 인상론자들은 유럽 등 선진국에서 최근 경유차가 감소세인 반면 한국에서 경유차가 급증하는 배경으로 휘발유보다 싼 경유 가격을 꼽는다. 5일 기준 휘발유는 ℓ당 1540원(전국 평균)인 반면 경유는 ℓ당 1380원으로 휘발유 가격의 89% 수준에 그친다. 휘발유에 부담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는 ℓ당 529원인데, 경유에 붙는 세금은 ℓ당 375원에 불과하다. 미국 멕시코 프랑스 벨기에 등은 휘발유보다 경유가 더 비싸다.

그러나 정유업계 등 경유세 인상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당장 경유차를 퇴출하기에는 친환경 차량 인프라가 절대 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정부 내부에서도 다른 조치 없이 경유세만 인상하는 방안에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유세를 인상할 경우 화물자동차사업법에 따라 유가보조금을 받는 화물트럭 등은 사실상 인상 효과에서 제외되는 반면 일반 SUV 운전자에게 부담이 쏠려 조세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화물 트럭의 유가보조금을 폐지할 경우 화물 업계의 대대적인 반발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2017년 진행한 용역 보고서에서 경유세 인상의 미세먼지 감축 효과가 작다고 나온 연구결과도 부담이다. 당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는 자동차 등 도로이동 오염원이 배출하는 초미세먼지가 전체 배출량의 14.57%에 불과하며, 경유 가격을 현재 2배인 ℓ당 2600원으로 올려도 미세먼지 감소가 2.8%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