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은 요즘 ‘코딩(coding·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푹 빠져 있다. 발단은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KB국민카드 본사 교육장에서 열린 임직원 대상 ‘코딩 교육’이었다. 강사는 태극기의 건곤감리에 담긴 ‘양’과 ‘음’을 코딩에서 사용하는 ‘이진법’에 비유했다. 이 사장은 “태극기에도 디지털 관점이 담겨있다는 게 놀라웠다”며 “코딩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임원들의 디지털 이해도를 높여야겠다”고 했다.
금융권에서 ‘코딩 바람’이 불고 있다. 행장도 사장도 예외 없다. 하나금융지주는 연말까지 그룹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코딩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일회성 이론 교육이 아니다. 코딩으로 간단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온라인에 공유하는 실무 중심 교육이다. IBK기업은행은 부지점장급 직원에게 코딩 교육을 하고 있다. 이 교육도 프로그램 설계, 데이터 관리법까지 포괄하는 ‘실무 맞춤형’이다.
신한은행은 진옥동 행장을 포함한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에센셜(Essential)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 이성환 고려대 인공지능(AI) 대학원 주임교수 등 디지털 분야 권위자를 초청하기도 했다.
금융권의 ‘코딩 바람’에는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임원들이 코딩을 이해해야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회사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하고 핀테크(금융+기술)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모든 금융 업무에서 ‘디지털 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건 금융권 공통의 생존전략이 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덧셈도 모르면서 곱셈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원의 디지털 능력은 회사의 ‘인재 채용 능력’과 직결되기도 한다. 금융권은 직원 채용 시 일반 직원의 정보기술(IT) 역량도 함께 검토한다. 면접관으로 들어가는 임원들이 ‘좋은 인재’를 알아보려면 코딩 활용 능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미 해외 금융권에선 코딩이 임직원 사이를 잇는 ‘언어’로 자리 잡았다. JP모건체이스와 골드만삭스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관리자급 직원에게 코딩 교육을 강제하고 있다. 코딩을 알아야 같은 ‘언어’로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취지다.
KB국민카드 코딩 교육을 진행했던 박준석 변리사는 5일 “금융권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인력개발원에서도 꾸준히 임원들 코딩 교육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초등학교에서도 코딩이 정규과목이 된 만큼 코딩 교육을 접할 기회가 없던 50대 임원들은 일종의 ‘위기감’ 때문에 코딩 교육에 나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