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혁명 성지’ 백두산에 올랐다고 4일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달 하순 ‘중대한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노동당 전원회의도 소집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끝내 결렬될 경우를 대비한 김 위원장의 ‘중대 결심’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많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김 위원장을 다시 ‘로켓맨’이라고 부르며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두 정상이 그동안의 브로맨스(남성 간 친밀한 관계)를 깨고 강대강 대치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라 혁명전적지를 둘러보고 “뜨거운 선혈을 뿌려 조선혁명사의 첫 페이지를 장엄히 아로새겨온 빨치산의 피어린 역사를 뜨겁게 안아봤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백두산 등정은 지난 10월 16일(보도일 기준) 이후 49일 만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박정천 총참모장 등 군 인사들을 대동했다. 강경 군사 행보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정한 연말까지 미국이 제재 철회 등 ‘새로운 셈법’을 들고 나오지 않는다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재개하는 등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북한은 이달 하순 노동당 제7기 중앙위원회 5차 전원회의를 소집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이후 8개월 만에 열리는 회의다. 조선중앙통신은 회의 소집 목적에 대해 “혁명 발전과 변화된 대내외적 정세의 요구에 맞게 중대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북한이 그동안 주장해온 ‘새로운 길’의 구체적인 그림이 드러날 수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국립외교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새로운 길을 택할지 여부에 대해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과의 대결구도가 펼쳐졌던 2017년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같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맞물려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런던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군대를 쓰지 않기를 원하지만, 만약 그래야 한다면 이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은 정찰기에 이어 해상초계기도 띄워 대북 감시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해상초계기 P-3C가 4일 한반도 상공을 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P-3C가 주로 잠수함 탐색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에 비춰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징후가 포착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미국은 협상의 여지를 닫아놓고 있지는 않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는 전날 워싱턴에서 열린 한국국제교류재단 행사에서 대북 문제와 관련해 “현 시점에 우리가 희망했던 만큼 많은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으며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점은 분명히 해달라”고 말했다. 비건 지명자는 이달 중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나 대북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미 양측은 비건 지명자의 방한 일정을 조율 중이지만, 이 본부장이 방미할 가능성도 있다.
최승욱 손재호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