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하원, 트럼프 탄핵보고서 “증거 넘쳐… 닉슨보다 심해”

입력 2019-12-04 17:16
애덤 시프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도널드 트럼프 탄핵조사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탄핵조사 보고서를 3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촉발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절차 1단계가 마무리된 셈이다.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사익을 위해 공권력을 남용했고, 이를 밝혀내기 위한 탄핵 조사도 방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국익보다 사익을 우선한 대통령은 탄핵돼야 한다고 밝혔다.

하원 정보위는 이날 300페이지 분량의 탄핵보고서에서 “대통령의 위법행위와 사법행위 증거가 차고 넘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이롭게 할 목적으로 직접, 그리고 정부 안팎의 대리인을 통해 우크라이나 정부의 개입을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지원을 대가로 자신의 정적인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부통령과 그의 아들에 대한 수사를 압박했다는 의혹이다. 바이든 부자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사업 비리 관련 의혹을 받는다. 미 하원은 대통령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권력을 악용해 외국 정상에게 수사를 요구했다며 탄핵조사를 개시했다.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은 위법행위에 몰두하고 지난 7월25일 통화가 완벽하다고 선언함으로써 본인 스스로 탄핵 조사의 입안자가 됐다”며 “외국 정부를 상대로 미국 대선 개입을 지속적으로 종용해온 행위는 대통령이 개인적·정치적 이득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법 제정자들은 국익보다 사익을 우선하는 대통령에 대한 조치를 마련해뒀다. 바로 탄핵이다”라고 덧붙였다.

핵심 쟁점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대가성’(quid pro quo)도 적시했다. 이 단어는 보고서에 총 45차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가성을 부인해왔지만, 지난 탄핵 조사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가 이를 인정해 파문이 일었다.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가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작성한 탄핵 조사 보고서 사본. 하원 정보위는 3일(현지시간) 이 보고서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위법 행위 및 사법 방해를 들어 그를 탄핵할 증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진=AFP연합뉴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의 탄핵 조사 방해 행위도 기록했다.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으로부터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하원의 탄핵조사를 방해하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 권력을 이용하고 행정부 전반에 권한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리처드 페리 에너지장관 등 최측근 참모·관료들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획책을 인지했고 일부는 오히려 조장하기까지 했다”며 “의회와 미국 대중들에겐 관련 정보를 차단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의 이 같은 움직임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불명예 퇴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경우보다 나쁘다고도 꼬집었다. 보고서는 “어떤 대통령도 이 정도로 헌법과 의회의 권한을 부정한 적이 없다”며 “핵심 증거 제출을 거부해 의회를 방해했던 닉슨 대통령조차도 탄핵조사를 실시하고 그의 보좌관들이 문서를 제작하고 의회 위원회에 증언할 수 있게 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탄핵보고서를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영국 런던에서 이 소식을 들었다. 그는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을 “정신이상이고 역겹다”며 “민주당은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할 게 뻔하기 때문에 순전히 정치적 이득을 보기 위해 (탄핵조사를)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스테파니 그리샴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엉터리 절차 끝에 시프 위원장과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범법행위 증거를 전혀 내놓지 못했다”며 “이 보고서는 그들의 좌절감을 반영할 뿐”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이날 탄핵보고서는 정보위에서 찬성 13표, 반대 9표로 가결돼 법사위원회로 회부됐다. 법사위는 4일부터 트럼프 대통령 탄핵 공청회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후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 전체회의에서 탄핵안이 가결될 경우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으로 넘어간다. 상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된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