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재신임, 황교안이 막았다… 연임에 거부권 행사

입력 2019-12-03 18:34 수정 2019-12-04 05:29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 천막농성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뉴시스

오는 10일 임기가 끝나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연임이 무산됐다. 나 원내대표가 의원총회를 소집해 재신임 여부를 묻겠다며 연임 의지를 드러냈지만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나 원내대표는 3일 의원총회에서 당헌·당규를 거론하며 “임기 연장이 안 되면 원내대표 선거를 하는 게 맞다. 내일 오전에 의원총회를 열어 임기 연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당헌·당규에 따르면 본래 원내대표 임기는 1년이다. 다만 국회의원 잔여 임기가 6개월 이내로 남았을 때는 의원총회 추인으로 연장할 수 있다. 의원들이 동의하면 나 원내대표의 임기는 20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5월 29일까지로 늘어난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의원들에게 임기 연장을 결정할 의원총회를 소집한다며 문자까지 보냈다.

그런데 채 몇 시간도 안 돼 당 지도부로부터 거부 통지서가 날아왔다. 황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청와대 앞 투쟁 천막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두 시간가량 논의한 끝에 원내대표 임기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날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나 원내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비공개 최고위에 참석, 의총을 소집해 임기 연장 여부를 묻겠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 최고위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원칙대로 한 것이다. 원내대표 임기 1년이 끝났고, 경선에 나서겠다는 의원이 있기 때문에 임기 연장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며 “원내대표에 나서겠다는 의원이 없다면 연장을 논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임기를 연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황 대표도 “원칙대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의 바람과 달리 당 지도부는 원내대표 연임 여부를 묻는 의총에 앞서 최고위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당헌·당규상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되지만, 선거일 공고권은 당대표에게 있기 때문이다. 당대표가 선거일 공고를 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선거가 열릴 수 없다. 반대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당대표가 선거일 공고를 하면 재신임 여부를 따지지 않고 예정대로 선거를 해야 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 천막농성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뉴시스

당 일각에선 나 원내대표가 황 대표로부터 사실상의 ‘불신임’ 판정을 받은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그간 나 원내대표와 황 대표는 각종 현안에 있어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무력 충돌에 가담한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는 방안만 하더라도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입장을 내비쳐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당 위원장이 석달째 공석으로 있는 것도 양측이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신경전을 벌인 결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한 중진의원은 “황 대표가 나 원내대표의 스타일을 버거워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가 쇄신 의지를 드러내는 차원에서 이 같은 결정을 했다는 해석도 있다. 황 대표가 사무총장과 당대표 비서실장 등 주요 보직에 새 인물을 들여 쇄신 분위기를 띄운 만큼, 지금이 원내지도부를 교체할 적기라고 봤을 수 있다. 원내 협상이 사사건건 벽에 부딪히면서 의원들의 피로감이 높아진 것도 변수로 꼽힌다.

나 원내대표의 연임이 거부되면서 선거전에도 불이 붙을 전망이다. 3선의 강석호 의원이 이날 출마를 선언한 데 이어 4선의 유기준 의원이 4일 출마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5선의 심재철 의원도 출마를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우삼 심희정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