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결렬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북·미 사이에는 접점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대한 결정을 할 때마다 백두산에 올랐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또다시 백두산 지역을 찾았고, 북한 외무성은 미국의 양보를 거듭 요구하며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재개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리태성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은 3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우리가 제시한 (북·미 협상의) 연말 시한부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며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향해 결단을 촉구한 것이다. 북한은 협상 재개 조건으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 및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전면 중단과 대북 제재 철회 등을 내걸고 있다.
리 부상은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중대조치를 깨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며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구태여 숨기려 하지 않았기에 연말 시한부가 다가온다는 점을 미국에 다시금 상기시킨다”라고 했다. ‘선제적 중대조치’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한이 지난해 취한 핵실험 및 ICBM 발사 유예 조치를 뜻한다. 미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고 해를 넘길 경우 핵실험과 ICBM 발사를 재개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리 부상이 말한 ‘크리스마스 선물’도 그것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2017년 7월 4일 ICBM급 화성-14를 발사하고 이를 “오만한 미국인들에 대한 독립기념일 선물”이라고 했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이 크리스마스까지 움직이지 않는다면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에서 인공위성 발사체를 쏘아올릴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일 삼지연군 읍지구 준공식에 참석했다. 삼지연은 북한의 혁명 성지인 백두산이 포함된 행정구역이다. 지난 10월 중순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올랐던 김 위원장이 다시 백두산을 찾은 것이다. 그가 중요한 정치·외교적 결정을 앞두고 찾았던 것을 감안하면 내년 신년사에 ‘중대 결심’이 담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미국이 끝까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과감하게 ‘노 딜’을 선언하고 자력갱생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미국 역시 북한의 압박에 쉽게 넘어갈 분위기는 아니다. 북한이 최근 해안포와 초대형 방사포 발사로 군사적 도발을 지속하자 미국은 대북 감시활동 강화로 맞서고 있다. 미 공군의 지상감시정찰기 E-8C(조인트 스타즈)와 북한 미사일 기지에서 발신하는 전자파 등을 수집하는 RC-135U(컴뱃 센트) 정찰기가 3일 한반도 상공에서 감시 비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2대의 미군 정찰기가 같은 날 동시에 출격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은 지난달 27~28일과 30일, 이달 2일에도 한반도 상공에 정찰기를 띄웠다. 북한의 도발 징후를 살피는 것이 주된 목적이겠지만, 북한 지역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과시해 북한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최승욱 손재호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