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GS 회장이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긴 상황에서 용퇴를 선언했다. 후임은 막내동생인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으로 결정됐다. 아들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게 관례인 한국 기업 문화에서 능력을 갖춘 적임자를 후임자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GS는 허창수 회장이 사장단 회의에서 용퇴를 선언함에 따라 허태수 부회장을 GS그룹 신임회장으로 선임했다고 3일 밝혔다. 공식 승계는 내년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나, GS그룹은 2020년 새해부터 그룹 전반의 사업계획이 차질없이 수행되도록 회장직 업무 인수인계를 위한 제반 준비를 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허창수 회장은 GS건설 회장으로 건설 분야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도 계속 맡을 예정이다. 허 회장의 셋째동생인 허명수 GS건설 부회장도 17년 만에 고문으로 물러난다. 허 회장의 사촌동생인 허연수 GS리테일 사장과 임병용 GS건설 사장은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GS 홍순기 사장은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허 회장의 장남인 허윤홍 GS건설 부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며 4세 경영진의 전면 배치가 이뤄졌다.
허창수 회장이 예상보다 일찍 은퇴를 결심한 것은 이대로 가면 GS그룹 전체가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GS건설, GS리테일, GS칼텍스 등 ‘건설-유통-에너지’를 주력으로 하는 GS그룹은 업의 특성상 변화보다는 안정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등 4차산업혁명의 영향력이 전 산업으로 확대하면서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위기감이 팽배해졌다. 허창수 회장은 “GS 출범 이래 변화에 둔감한 ‘변화 문맹’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쉴새 없이 달려왔다”며 “하지만 혁신적 신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우리도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절박함 속에서 지금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 적기로 판단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후임으로 허태수 신임회장을 발탁한 것은 그룹 내 경영자 중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판단에서다. 허 신임회장은 GS그룹의 ‘글로벌 센서’ 역할을 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허 신임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케이블SO를 팔고 홈쇼핑을 모바일 중심으로 체질 개선했다. 홈쇼핑이 내수 산업이라는 편견을 깨고 글로벌 미디어와 손잡고 해외 홈쇼핑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GS그룹이 실리콘밸리에 벤처투자회사를 설립해 그룹의 혁신 동력으로 삼겠다는 계획도 허 신임회장의 조언 때문으로 알려졌다. 허 신임 회장은 “초경쟁 시대를 이겨낼 핵심 경쟁력은 고객의 개별적 니즈를 얼마나 세밀하게 파악하고 대응하느냐에 달렸다”면서 “디지털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이며,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업혁신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신임회장은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질문을 던지는 스타일이고, 운동도 일단 시작하면 수준급이 될 때까지 파고드는 면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창수 회장은 고(故) 구본무 LG 회장과 함께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켜왔으며, 2004년 별다른 잡음 없이 LG와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허 회장은 2005년 3월 GS그룹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출범 당시 매출 23조원, 자산 18조원, 계열사 15개였던 GS그룹을 매출액 68조원, 자산 63조원, 계열사 64개 규모로 약 3배 이상 성장시켰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