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무죄입니다, 외갓집을 찾습니다” 50년 만에 이뤄진 상봉

입력 2019-12-02 17:06 수정 2019-12-02 17:19
청주 상당경찰서 제공, 연합뉴스

“저는 무죄입니다. 외갓집을 찾고 싶습니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청구 중인 윤모씨(52)가 애타게 찾던 외가 친척들을 만났다. 50여년 만에 상봉이다.

윤씨의 재심을 돕는 박준영 변호사는 윤씨가 2일 오전 외삼촌이 입원한 서울 모 병원을 찾았다가 밝혔다. 이 병원은 막내 외삼촌 아들이 입원 중인 곳으로, 이곳에서 외삼촌 2명을 만났다.

윤씨는 이날 외가 식구들을 생애 처음으로 마주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었고, 젊은 날에는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 옥살이를 하느라 친척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2일 오전 서울 모 병원에서 윤씨가 외가 친척을 만나 손을 잡고 있다. 청주 상당경찰서 제공,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 씨가 재심청구서를 들고 지난달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윤씨는 사건 재심을 청구하기 전인 지난달 13일 기자회견에서 눈물의 사모곡을 띄우며 외갓집을 찾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는 “어머니를 무척 존경한다. 어머니는 저에게 희망을 주시고 저를 인간답게 살라고 하셨다”며 “소아마비에 걸린 제가 불편하게나마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저를 강하게 키운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제게 남들처럼 살라고 하셨다”며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고 그리워 외가를 찾고 싶다”고 호소했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 씨가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 참석하며 직접 써온 글.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 씨가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직접 써온 글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범인으로 검거돼 억울한 옥살이를 하느라 찾아보지 못한 외가 식구를 만나고 싶다”며 “어머니 존함은 박금식이고 고향은 진천이다. 어머니를 아시는 분은 꼭 연락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후 거주지 관할서인 청주상당경찰서의 도움을 받아 외삼촌 3명과 연락이 닿았다. 경찰은 모두 사망한 윤씨 부모님의 호적 등본 등을 분석했고, 어머니 7형제 가운데 외삼촌 3명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윤씨는 “태어나서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는데 이 반가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 씨의 공동변호인단 박준영 변호사가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재심 청구 사유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변호사 역시 같은 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같은 소식을 전하며 윤씨의 소감을 대신 전했다. 윤씨는 “숙원이었던 친척들을 찾게 됐다. 50년이 넘게 흘러 만나게 돼 기쁘면서도 기분이 참 묘하다”며 “찾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었는데, 이 반가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한 주택에서 잠자던 박모(당시 13세)양이 성폭행당한 뒤 숨진 채 발견된 일이다. 당시 경찰은 이듬해 7월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강간살인 혐의로 검거했다. 윤씨는 20년 옥살이를 치른 끝에 2009년 8월 가석방됐다.

지난 10월 화성연쇄살인 사건 피의자 이춘재(56)의 자백이 등장하면서 윤씨의 사연이 화제됐다. 윤씨는 당시 경찰이 고문 행위를 해 거짓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수원지법에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 지난달 13일 기자회견 당시 윤씨가 발표한 글 전문

저는 무죄입니다. 오늘은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교도소를 나왔는데 갈 곳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습니다. 뷰티플 라이프 나호견 원장님이 저를 잘 돌봐주셨습니다.

박종덕 교도관님은 인간적으로 저와 대화를 잘 해주시고 상담도 잘 해주시고 항상 많은 도움을 주시고 종교 위원님 한 달에 만남을 주시고 힘들고 외로울 때 많은 것을 주시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누님에게도 깊이 감사드리고 저에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곳에 지내는 동안에 몸이 아플 때 누님께서 무척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숙부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항상 건강하라고, 부디 몸 관리 잘하고 주어진 생활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광역수사대 박일남 반장님 및 김현수 경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희망을 주시고 꼭 일을 해결하시겠다고 저에게 말씀하였습니다.

어머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머님은 저에게 모든 것에 희망을 주시고 저를 인간답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님을 무척 존경합니다. 어머님은 저의 아픈 다리 재활에 더욱 신경을 써주셨고 남들처럼 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외갓집을 찾고 싶습니다. 어머님 존함은 박금식입니다. 고향은 진천입니다. 저의 어머님을 아시는 분은 연락주세요.

여기 오신 기자님을 도와주시면 일이 잘되고 잘 될 것 같습니다.

지금 경찰을 백 프로 믿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세요.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