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나 문화상품권 사야돼” 한마디에…

입력 2019-12-01 15:04
보이스피싱. 연합뉴스

#1.“엄마, 나 문화상품권 사야 되는데^^ 신용카드랑 주민등록증 사진 좀 찍어 보내주세요.”
어느 날 이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은 어머니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히 친아들이 보낸 메시지라 여겼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친아들 이름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스마트폰 카메라로 신용카드와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런데 느닷없이 신용카드로 93만원이 결제됐다는 문자메시지가 떴다. 문화상품권 가격치고는 너무 많은 돈이었다. 아들에게 확인차 전화를 걸었다. 아뿔싸…. 그제야 보이스피싱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2. A씨는 “안마의자 42만3000원 결제 완료”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사지도 않은 고액의 안마의자를 왜 결제했느냐 싶어 그는 급하게 문자를 보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받자 마자 상대방은 ‘유창하고 자연스런 서울말’로 “금감원 콜센터입니다”라고 했다. A씨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저는 콜센터 상담원인데, 아무래도 체크카드 해킹을 당한 것 같은데요. 주민등록번화와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알려주세요”라고 말했다. 다 알려줬고, 마지막으로 “계좌 OTP번호도 알려주세요”라는 말에 묻는대로 다 가르쳐줬다. 전화를 끊고 계좌를 확인하니 6000만원이 빠져나간 뒤였다.

전화로 사기를 치는 보이스피싱은 이미 우리 사회에 대중화되다시피 한 상황이다. 그런데 갈수록 정교하고 치민한 신종수법이 나오고 있다. 계좌나 신용카드로 돈을 빼가는 1차 범죄뿐 아니라 주민등록번호를 빼돌려 2차, 3차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는 올해 보이스피싱 피해로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신청한 이들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1일 발표했다. 변경위는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보이스피싱 재산 피해를 이유로 주민등록 변경 심사를 진행한 158건 중 143건을 변경했다.

보이스피싱(사기전화) 피해로 주민등록번호 변경까지 신청한 이들은 대부분 오래된 수법의 피해자였다. 검찰, 경찰 등 사법기관이나 은행 등 금융기관 사칭범에게 당했다. 검찰·경찰을 사칭한 범죄 연루·협박 사기 73건(51%)이 가장 많았고 금융기관을 사칭한 금융 지원 명목사기가 64건(44.8%)으로 뒤를 이었다. 전체 95.8%에 이른다.

이런 보이스피싱은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돼 있으니 얼른 현금을 뽑아 금감원 직원에게 전달하라”는 식으로 이뤄진다. 피해자가 스마트폰 원격조정애플리케이션 접속을 허용하면,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 비밀번호를 물은 뒤 돈을 빼돌린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 주민등록번호 변경 신청자는 여성이 90명(57%)으로 남성 68명(43%)보다 많았다. 연령 별로는 20대가 39명(24.7%), 50대가 42명(26.6%)으로 다수였다.

재산 피해액은 다양했다. 1인당 1000만~5000만원이 66건(54.1%)으로 가장 많았고 100만원에서 1000만원이 31건(25.4%)으로 뒤를 이었다. 신청인 1명은 약 3억원의 피해를 봤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