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한국당 지도부를 향해 연일 직언을 날렸다. 특히 한국당이 29일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통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안건을 저지하겠다고 나선 것에는 “여야 모두 진퇴양난에 빠졌지만 민주당이 더 많은 선택의 카드를 쥔 셈이 됐다”며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홍 전 대표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한국당이) 악화하는 여론을 어떻게 감당할지 판단해야 한다”며 “야당의 정치력과 지도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면피 정치가 아닌 책임 정치를 하라”고 강조했다.
29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본회의에 상정된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며 “계속되는 불법과 다수의 횡포에 이제 한국당은 평화롭고 합법적인 저항의 대장정을 시작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당은 올해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필리버스터를 통해 패스트트랙에 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저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홍 전 대표는 “필리버스트란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로서 소수당의 법안저지 투쟁의 마지막 수단”이라면서도 종국적인 저지 대책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 예산안과 민생법안을 12월 3일 먼저 상정해서 처리하고, 마지막 안건으로 패스트트랙 안건을 상정해서 필리버스트로 저지하면 정기국회 종료 후 바로 임시회를 소집할 것”이라며 “그러면 그 다음 소집되는 임시회에서는 필리버스트 없이 바로 표결 절차에 들어간다. 결국 야당은 민심의 악화를 각오하고 예산과 민생법안도 필리버스트로 막아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산은 12월 3일까지 통과되지 않으면 정부 원안으로 확정이 되어 버리고, 남는 것은 민생 법안인데 그것을 필리버스터로 계속 막을 수 있을지, 악화되는 여론을 어떻게 감당할지 그것을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야 모두 진퇴양난에 빠졌지만 민주당이 더 많은 선택의 카드를 쥔 셈이 됐다”며 “야당의 정치력과 지도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면피 정치가 아닌 책임 정치를 하라”고 조언했다.
한편 홍 전 대표는 전날 올린 게시글에서도 한국당 지도부를 향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당을 이 지경으로 어렵게 만든, 임기가 다 된 원내대표는 이제 그만 교체하고 새롭게 전열을 정비해 당을 혼란에서 구하고 총선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홍 전 대표는 공수처법보다 선거법 개정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5일 단식투쟁 중이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찾았던 것을 언급하며 “내가 황 대표를 찾아가서 패스트트랙을 타협하라고 한 것은 선거법을 막지 못하면 강성노조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의당이 21대 국회에서는 교섭단체가 되고, 우리는 개헌저지선 확보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의당은) 지금 6석을 가지고도 국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데 교섭단체가 되면 국회는 강성노조가 지배하는 국회가 되고 나라는 마비가 될 것”이라며 “공수처법이야 다음 정권에서 폐지할 수 있지만 선거법은 절대 변경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지금 기소 대기 중인 당내 의원들은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에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생명이 걸려있다. 전적으로 지도부 책임”이라며 “그 사건의 원인이 된 패스트트랙이 정치적으로 타결되면 검찰의 기소 명분도 없어진다. 막을 자신도 없으면서 수십 명의 정치생명을 걸고 도박하는 것은 동귀어진(同歸於盡·함께 죽을 생각으로 상대에게 덤벼듦)하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