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된 고졸 일용직 청년 “청년수당이 ‘글 쓸 시간’ 줬다”(영상)

입력 2019-11-29 05:00 수정 2019-11-29 05:00
28세 청년 조기현씨의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가 주목을 받고 있다. 스무 살 때부터 치매 아버지를 돌봐온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국민일보 출판담당 박지훈 기자는 이 책을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꼽기도 했다.

부모의 이혼 후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조씨는 재앙처럼 찾아온 아버지의 치매를 홀로 감당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되는 ‘2인분의 삶’을 살아왔다. 이 과정에서 조씨는 여러 차례 사회복지 제도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거부와 모멸을 경험한다.

책의 내용은 아직도 갈 길이 먼 한국 사회복지에 대한 고발적 성격이 강하지만, 이 책의 출간 자체는 우리 사회가 어렵게 전진시켜온 복지제도의 한 성과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돈 벌고 아버지 간병하느라 정신 없는 세월을 보내던 20대 청년이 꿈꾸던 책을 내고 작가로 데뷔할 수 있었던 데는 사회복지의 조력이 있었다.

“공돌이와 노가다를 거쳐, 메이커와 작가로 일하면서, 치매에 걸린 50대 아빠의 아빠로 살아가는, 1992년생 청년 보호자다. 서울시에서 지급한 청년수당 덕에 청년 보호자의 일과 삶을 기록할 수 있었다.”

조씨는 ‘저자 소개’에 서울시 청년수당 덕에 책을 낼 수 있었다고 적었다. 지난 2016년 시작된 서울시 청년수당은 청년들의 구직 등 사회 진입 시도를 지원하기 위해 월 50만원씩 6개월간 지급한다. 보편복지나 현금복지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줄기차게 공격해온 정책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2만여명이 청년수당을 받았다.


쉴 수 있으니까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일만 하는 노예같은 심리 상태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나도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고,
책을 실제로 써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27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조씨는 “청년수당을 받으며 비로소 책을 쓸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만약 청년수당이 없었다면 책을 쓸 수 없었을까?’라고 다시 물었더니 “책을 낸다고 해도 많이 늦었을 것”이라며 “어쩌면 책이라는 형태로 내 이야기를 하는 걸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조씨는 “스무 살이 되면서 작가라는 꿈을 갖게 됐고, 아버지라는 주제에 대해 써야겠다는 생각도 꽤 오랫동안 해왔다”면서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졌다. 간병을 하고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글은 일기장에만 썼다”고 말했다.

조씨는 생계와 아버지 간병비를 위해 건설일용직 일을 해왔다. 이런저런 일을 해온 그가 건설일용직을 선호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장 인력소장과 맘만 잘 맞으면 출근일을 맘대로 정할 수 있고, 오후 5시면 칼퇴근. 하루 10만원 당일 페이니까 월급 떼일 걱정 없고. 새벽 4시반에 일어나는 것만 참으면 괜찮은 일이다.”

그에겐 생활을 위한 돈과 꿈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돈을 벌다보면 늘 시간이 부족했다. “자기 시간, 그게 늘 없었다. 새벽 4시반에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했다. 자고 나가고 자고 나가고. 쉴 때는 이틀간 누워만 있어야 했다. 작업복도 빨고.”

“생계를 하면서 채워지지 않았던 10%, 그걸 채워준 게 청년수당이었다”고 조씨는 말했다. 지하철 광고를 보고 청년수당을 신청했다는 그는 지난해 50만원씩 6개월간 청년수당을 받게 됐다.

“건설일용직 일당이 10만원이니까 50만원이면 5일을 일 안 해도 되는 셈이다. 실제론 7∼8일 일을 안 해도 된다. 5일 일하면 쉬어야 되는데 그게 없으니까. 쉴 수 있으니까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일만 하는 노예같은 심리 상태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나도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고, 책을 실제로 써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 10월쯤 실제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 얘기는 마음 속에, 일기장 속에 이미 90%는 준비가 돼 있었다. 관련 자료들도 꾸준히 읽어왔다”면서 “90%는 차 있었고 10%가 비어있었는데 그걸 채워준 게 청년수당이다. 문턱을 넘을 수 있는 힘을 줬다”고 얘기했다.

그는 한 달 50만원의 청년수당 대부분을 밥값에 썼다고 한다. 혼자서 뭘 만들어 먹어야 되는 시간을 아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기현씨와 아버지. 조기현 제공

나같은 사람도 많구나,
나도 청년이구나,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사회의 도움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구나,
그걸 깨닫고 받아들이게 됐다.

조씨는 청년수당이라는 보편복지, 현금복지의 방식이 아니라 부모 재산이나 취업 준비 여부 등을 따져 지원하는 방식이라도 괜찮지 않겠냐는 얘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수급비처럼 매일 조사 나오고 가난을 증명해야 하고 모멸을 줬다면 청년수당을 받는 6개월이 그렇게 안정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수급자도 경험해봤고, 청년수당도 받아봤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디테일하고 섬세했다. 6개월을 온전히 자유롭게 누릴 수 있었다. 사회복지 공무원들에게 당했던 멸시나 모멸감을 경험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내게 기회를 준다는 느낌이 좋았다.”

조씨는 육체적 나이로는 청년이지만 사회적으로 호칭되는 청년에 자신이 포함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한다.

“학자금이나 취업준비, 이런 것만 청년의 모습이라고 나도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호명되는 청년에 내가 포함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고졸에 육체노동자로 살아왔으니까. 청년수당을 받으면서 나처럼 가족을 돌보느라 진로 이행이 뒤로 밀리는 청년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같은 사람도 많구나, 나도 청년이구나,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사회의 도움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구나, 그걸 깨닫고 받아들이게 됐다.”


“아빠가 일을 못 한 지 오래됐다고,
나 혼자 돌본 지 7년이 넘어간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아직 설익은 꿈을 꾸고 있다고,
이제 살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난달 박원순 서울시장은 내년부터 3년간 3300억원을 투입해 총 10만명에게 청년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한 해 7000명 수준에서 3만여명으로 청년수당 대상자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이날 박 시장 발표 자리에는 조씨도 초청됐다. 그는 청년수당을 통해 꿈을 이룬 사례로 소개됐다.

조씨는 “청년수당이 확대가 되면 서울시 청년들이 다 받게 되는 셈”이라면서 “발표를 보고 ‘예산이 없어서 안 돼요’라는 말을 이젠 안 들어도 되겠구나, 그게 첫 느낌이었다. 예산이 없어서 안 된다는 건 보편적인 복지가 아니다”라고 얘기했다.

그는 ‘예산이 없어서 안 돼요’ ‘자격이 안 돼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 쓰러지고 난 뒤 지원을 받으려고 하니까 이혼한 지 8년이 넘은 엄마, 엄마와 함께 사는 여동생까지 끌고 들어와 위장이혼 가능성이 있으니 가계소득 산정에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내친다. 공장에서 180만원 벌었을 때였는데 아빠 병원비 감당이 안 돼서 지원을 알아보니까 180만원 수입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그때 병원비가 880만원 나오고 그럴 때였다.”

책 속에는 아버지의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러 주민센터에 갔다가 좌절한 조씨가 공무원에게 울부짖듯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빠가 일을 못 한 지 오래됐다고, 나 혼자 돌본 지 7년이 넘어간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아직 설익은 꿈을 꾸고 있다고, 이제 살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는 “청년수당은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가족이랑 엮고, 금수저 흙수저 하면서 구분하고, 수당을 받기 위해 뭔가 더 가난한 것처럼 거짓말을 해야 되고, 그런 순간이 없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제는 욕을 듣더라도 쌍욕은 먹지 않아도 되고,
비판을 받더라도 합리적인 비판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조씨는 이제 책을 내고 작가가 됐다. 그동안 그는 단편영화 한 편을 만들었고, 소극장에서 연극을 하나 올렸고, 친구들이 만드는 독립잡지에 평론 한 편을 실었다. 책 출간은 청년예술가로 살아온 그의 삶에서 가장 번듯한 작품이다.

책을 낸 소감을 묻자 그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다기보다 자신의 존재가 가시화된 느낌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책 하나 낸 게 차이가 크다. 이제는 욕을 듣더라도 쌍욕은 먹지 않아도 되고, 비판을 받더라도 합리적인 비판을 들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책을 낸 후 여기저기 불러주는 데도 생겼다. 조씨는 “책이 이렇게 주목받을 줄 몰랐다”면서 “12월 되면 남대문시장에 가서 두툼한 노가다복 사서 건설 일 나갈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어쩌면 책 때문에 다른 생계 창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미장 기술자로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다룬 ‘1포 10㎏ 100개의 생애’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으며, 서울문화재단 지원으로 영등포를 주제로 한 영상·공연 작업도 진행 중이다.

조씨는 “앞으로도 계속 예술가로 살아가고 싶다”면서 “아버지의 간병이 사회적 돌봄으로 해결이 되고 저 혼자 떠안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다면 계속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 그게 안 되면 어떨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영상=최민석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