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KBS2·이하 동백꽃) 팬들은 이런 생각들을 줄곧 되뇌었을 테다. 싱글맘 동백(공효진)과 용식(강하늘)의 사랑은 담백한데 왜 이리 저릿할까, 시골마을 옹산의 휴머니즘이 이토록 따뜻한 이유는 뭘까, 연쇄살인범 ‘까불이’는 어찌 떠올린 걸까…. 꼬리를 무는 이런 숱한 의문들은 결국 다음의 감탄으로 귀결된다. ‘작가 임상춘은 대체 누구인가.’
성별과 나이 등 편견을 벗어나고자 중성적 필명을 사용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임상춘은 30대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놀라운 건 신인급 작가라는 점이다. 4부작이었던 ‘백희가 돌아왔다’(2016)에 이어 이듬해 ‘쌈, 마이웨이’로 첫 장편 신고식을 화려하게 치러낸 그는 동백꽃으로 단숨에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다. 공효진은 최근 인터뷰에서 “말투나 목소리 크기가 딱 동백이”이라며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고 전했다. 손담비는 “(옛 개그콘서트의) ‘우비소녀’처럼 귀여운 인상”이라고 귀띔했다.
사실 이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임상춘의 필력이다. 공효진은 “이야기꾼이다. 이야기가 늘 차고 넘쳐서 ‘아까워 죽겠다’면서 줄이는 데 애를 쓰셨다”고 했다. 늘 시무룩했던 동백이 엄마 정숙(이정은)과 용식의 사랑을 통해 당당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옹산 사람들이 까불이를 잡기 위해 뭉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묵직한 감동을 안겼다. 시청률은 계속 치솟아 23.8%(닐슨코리아)까지 올랐다.
전문가들은 임상춘을 ‘포용력의 작가’로 치켜세웠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임상춘의 작품은 전부 약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극복을 그리고 있다”며 “이번에는 옹산이라는 공동체를 가족이란 코드로 풀어내면서 진한 위로를 전했다”고 평했다.
이는 향미(손담비)가 죽은 후 손담비에게 “어려웠던 캐릭터인데, 잘 소화해줘 고맙다”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던 임상춘의 맑은 성정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었다. 깔끔한 연출로 극 흥행을 이끈 차영훈 PD와의 일화에서도 그런 품성을 느낄 수 있다. ‘백희가 돌아왔다’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던 차 PD는 “촬영하면서 의견 충돌은 전혀 없었다”며 “항상 여러 선택지를 주고 왜인지 물어본다. 그런 토론을 선호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배우로서는 ‘말맛’이 대단했다. 연기 경력이 반세기에 가까운 배우 고두심은 ‘어떻게 대사가 이러냐’며 감탄했다고 한다. 까불이가 선사하는 서스펜스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극의 매력이었다. 차 PD는 “살인범에게 까불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인 것에서도 작가 특유의 균형감을 느낄 수 있었다”며 “공포의 대상만이 아니라 그 인물 속에도 서사를 담으려는 준비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다행히 임상춘이 작가의 꿈을 꾼 이유는 알려져 있다. 모두가 행복해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차 PD는 “나와 작가님 모두 눈물 둑이 무너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통화하면서 서로 울컥해 눈물 흘릴 때가 많았다. 행복해서 그랬던 것”이라고 전했다. 임상춘도 시청자처럼 동백꽃으로 위로받고 함께 꽃피운 셈이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