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m 내 통신 확인” 검, 기무사 휴대폰 수십만건 감청 수사

입력 2019-11-27 17:40

옛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군 고위직 다수의 휴대전화 통화·문자메시지 내역을 대규모로 감청한 정황이 포착됐다. 기무사가 불법 감청에 활용한 장비는 200m 거리 내에 있는 휴대전화들의 통신 내역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라 한다. 국방부와 계룡대의 군 장성들을 엿들은 범행인데, 이들과 통화한 민간인들의 정보도 감청됐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검사 강성용)는 27일 기무사 출신인 예비역 중령 A씨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A씨는 2013년부터 2014년 사이 6개월 이상 군 장성 등 고위직이 모이는 건물 주변에 불법 제조된 휴대전화 감청 장비 7대를 설치하고 수십만건 이상의 통화·문자메시지를 감청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감청 장비는 주변 200m 안에서 이뤄지는 통화, 문자메시지 송수신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장비다. 이 장비를 제조토록 교사했다는 혐의도 A씨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포함됐다. A씨는 특히 충남 계룡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등 현역 장성들의 출입이 빈번한 곳에 감청 장비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기무사가 이 장비를 군 고위직이 많이 있는 곳에 설치했다”고 말했다.

기무사 불법 감청 의혹과 관련한 강제수사는 검찰이 한 방위사업체의 정부 출연금 횡령 사건을 수사하던 중인 지난 9월부터 시작됐다. 수사선상에 있던 업체가 인가를 받지 않고 기무사에 휴대전화 감청 장비를 납품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검찰은 지난 9월과 지난달 군부대 등을 수색해 이 장비들을 확보했다. 검찰은 불법 감청 장비의 제작과 관련해 공범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건 A씨가 처음이다.

검찰은 A씨의 신병을 확보한 뒤 불법 감청된 통화·문자메시지 내용이 어떻게 활용됐는지를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불법 감청이 이뤄진 장소는 군 고위직이 모이는 곳이지만 민간인들의 사적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통화 상대방이 민간인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기무사 해체 뒤 출범한 안보지원사령부는 지난 7월 “옛 기무사가 군사기밀 유출 차단 목적으로 2013년 말 감청 장비를 도입한 후 성능 시험을 진행했던 사실을 확인했다”며 “법적 근거가 미미하다는 문제제기에 2014년 초 중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안보지원사령부는 장비 구입 내역 등을 검찰에 보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