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정권 겨누는 2년 전 ‘탐사기자 피살사건’

입력 2019-11-27 17:23
살해된 탐사 전문 기자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 사진=EPA연합뉴스

지중해 작은 섬나라 몰타에서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고발해오다 2년 전 피살당한 기자의 사건이 다시 정권을 뒤흔들고 있다. 최근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사건에 연루된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소환되거나 직위에서 물러나면서다. 총리까지 연루됐을 가능성이 나오면서 야권과 국민들은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영국 BBC방송 등은 26일(현지시간)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 기자가 사망한 지 2년이 지난 가운데 조지프 무스카트 정부의 핵심 인사들의 사임이 정권을 뒤흔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스카트 총리는 이날 케이스 스켐브리 비서실장의 사임을 발표했다. 사임 이유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갈리치아 기자의 피살과 관련이 있다는 시각이 많다. 몇 시간 뒤에는 콘라드 미치 관광장관이 사퇴했다. 두 사람은 무스카트 총리의 최측근이다.

갈라치아 기자는 블로그에 몰타 정치권의 온갖 비리를 고발하는 탐사기자로 유명해졌다. 그는 몰타 총리와 비서실장이 탈세를 위한 유령회사를 설립했다는 폭로도 했다. 하지만 2017년 10월 16일 그는 누군가가 차에 설치한 폭탄으로 폭사했다. 당국이 수사에 나섰고 두 달 뒤 암살을 실행한 혐의로 남성 3명이 체포·기소됐지만 배후는 2년 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달 초 몰타 경찰이 유명 기업인 요르겐 페네치를 지난 20일 체포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페네치는 갈리치아 기자 피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두바이에 설립한 정체불명의 회사를 통해 정계 고위 인사들에게 뒷돈을 건넸다는 의혹을 제기된 바 있다. 그는 체포 후 정보 제공을 대가로 사면을 요구했다. 경찰은 총리 비서실장인 케이스 스켐브리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페네치가 정계 유력 인사들을 후원했다는 소문이 많아 향후 무스카트 내각으로까지 수사가 진척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야당과 시위대는 이날 수도 발레타에 있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무스카트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갈리치아 기자의 얼굴이 담긴 팻말을 들고 정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타임스오브몰타의 허먼 그레치 편집장은 BBC에 “몰타에서 이런 시위가 발생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