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면 충돌…美 “홍콩 사태 우려”,中 “불장난 말라”

입력 2019-11-27 16:59
지난 18일 시위대와 경찰의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던 홍콩 이공대 부근에서 경찰에 검거된 시위대.AFP연합뉴스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하고 친중파가 궤멸한 뒤 홍콩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중국 외교부에 초치된 테리 브랜스테드 주중 미국대사는 오히려 “홍콩 사태를 매우 우려한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민주 진영의 선거 승리에 대해 “홍콩 시민들에게 축하를 보낸다”며 중국을 자극했다.

중국은 미국 등 서방을 향해 “내정간섭을 중단하라”고 역공을 폈고, 미국내 여성의 성차별 등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2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브랜스테드 대사는 지난 25일 정쩌광 외교부 부부장에 초치된 자리에서 “우리는 홍콩 사태를 심각하게 우려하며 지켜보고 있다”면서 “미국은 모든 형태의 폭력과 협박을 비난한다”고 밝혔다.

브랜스테드 대사는 범 민주 진영의 구의원 선거 승리와 기록적인 투표율을 거론하며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반영되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미국은 믿는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가 미 상하원의 홍콩 인권법 통과에 항의하기 위해 브랜스테드 대사를 초치했는데 그는 오히려 홍콩 시민의 목소리를 존중하라는 식으로 중국 고위관료에게 대놓고 면박을 준 셈이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정 부부장이 브랜스테드 대사를 초치해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고, 외국 정부와 세력의 간섭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고 전하면서도 브랜스테드 대사의 발언은 소개하지 않았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6일(현지시간) 홍콩에서 치러진 “자유롭고 공정하며 평화적인 선거 결과”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홍콩 시민들에게 축하를 보낸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국무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계속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및 홍콩인들이 열망에 따라 보장돼야 하는 민주주의의 가치, 홍콩의 근본적 자유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중국 공산당이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있다는 문건이 폭로된 것과 관련,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이번 문건은 중국의 지도부가 대규모 인권 침해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강력한 증거”라며 “위구르족을 포함해 신장의 이슬람교도를 무자비하게 감금하고, 조직적으로 억압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6일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2017년 들어선 ‘직업훈련소’가 소수민족 탄압을 위해 만들어진 강제 구금시설이라는 증거가 담긴 중국 정부 내부 문건을 보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에 대해 “매우 심각하고 의도적인 인권 침해로 현재도 진행중”이라며 “중국 정부에 임의로 구금된 사람들을 즉각 풀어주고, 신장 주민에 테러를 자행했던 가혹한 정책도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영국 외교부도 “위구르의 무슬림 교도와 다른 소수민족의 문화와 종교 자유에 가해지는 무분별한 구속을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독일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도 위구르족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성명을 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수용소에 수감된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 사람들.

중국은 친중파가 참패한 홍콩 선거 결과에 대해 미국 등 서방에 화살을 돌리며 연일 비난을 퍼붓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종성 논평에서 “미국의 어떤 패권적 간섭도 허사가 될 것”이라며 “미국 정치인들은 불장난을 그만두고 홍콩과 중국 내정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신문은 “중국은 홍콩의 번영과 안정, 일국양제를 파괴하는 어떤 기도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범민주 진영 구의원들이 당선 후 시위대의 ‘최후 보루’였던 홍콩이공대를 찾아간 데 대해 “밑바닥의 민생을 챙겨야 할 이들이 입법회 의원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했다.

중국은 미국내 여성의 성차별 등 인권문제도 거론하고 나섰다.

중국인권연구회는 “미국내 성차별로 여성의 인권실현이 심각하게 저해되고 있다”는 내용의 ‘미국 인권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회는 보고서에서 “미국 여성은 경제 분야에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취업과 임금 등 분야에서 심각한 차별이 존재한다”며 “미국 직장과 대학 내에서 여성의 성희롱 피해도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미국 여성 3명 중 1명이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고, 교도소에 수감중인 여성들의 폭력 피해도 심각하며 여군들은 군복무 중 성희롱과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연구회 관계자는 “미국은 스스로 ‘인권수호자’를 자처하지만 미국인들은 인종 차별, 성차별, 총기 폭력 등 모든 종류의 인권 침해에 직면해 있다“며 ”그러나 미국은 오래 전부터 다른 나라를 공격하거나 내정에 간섭하고,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는 구실로 ‘인권’을 이용해왔다“고 지적했다.

연구회 관계자는 “인권연구회가 미국 성차별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룬 것은 처음이며, 미국의 다른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춘 보고서를 추가로 내겠다”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