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 잃고 충격에 약해진 금융시장”… 저금리 후폭풍 대비하라

입력 2019-11-27 15:00 수정 2019-11-27 15:00
‘채권 거품’ ‘비우량 회사채 발행’ 위험 수위
기관투자가는 ‘위험 자산’ 투자 늘리기도
정치적 불확실성은 내년에도 상존
“통화정책 의존 말고 재정정책 역할 키워야”


전 세계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후폭풍을 부른다는 경고음이 나왔다. 가장 큰 위험은 ‘채권 거품’이다. 매매차익을 노리고 ‘마이너스 금리’ 국고채로 투자수요가 쏠리면서 채권 가격이 과대 평가되고 있다. 채권 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여기에다 ‘부채 폭탄’도 덩치를 키우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비우량 기업들이 앞다퉈 싼 값에 회사채를 발행한다. 기관투자가는 보수적 운용을 버리고 고위험 자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건전성을 잃은 글로벌 금융시장은 외부 충격을 흡수할 ‘면역력’을 차츰 잃고 있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홍콩사태 격화 같은 정치적 불확실성은 글로벌 금융시장을 무너뜨릴 ‘방아쇠’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기대지 말고 재정정책 역할을 키워야 할 시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제금융센터는 2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2020년 글로벌 경제·금융 주요 이슈 및 전망’ 설명회를 열었다. 국제금융센터는 “각국 중앙은행의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건전성이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시장 건전성 악화가 내년 세계경제 성장을 크게 제한한다는 비관적 관측을 내놨다.


우선 저금리 장기화 흐름은 마이너스 금리의 국채로 투자가 몰리는 ‘쏠림 현상’을 낳고 있다.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전 세계의 마이너스 금리 국채 규모는 17조 달러에 이른다. 전체 국채의 25%를 차지할 정도다. 금리가 마이너스까지 추락한다는 건 반대급부로 투자 수요가 쏠려 채권 가격이 뛰고 있음을 의미한다. 투자자들은 시중에 넘치는 자금을 마이너스 금리 국채 투자에 쏟고 있다. 채권 금리의 추가 인하를 예상하고 매매차익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올해보다 뜸할 것으로 예측된다. 주요국을 중심으로 기준금리 인하의 실효성 논란이 거세다. 통화정책을 추가로 펼칠 여력도 줄고 있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가 마이너스 금리 국채를 팔려고 해도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원금 손실을 손놓고 바라만 봐야 한다. 채권 거품이 순식간에 꺼질 수 있다.

비우량 기업의 부채 확대도 심각하다. 저금리로 회사채 발행 비용(회사채 금리)이 감소하자 잇따라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다. 글로벌 고수익·고위험 채권 규모(BB등급 이하)는 이달 중에 2조4000억 달러에 달했다. 투자금 상환조차 기대하기 힘든 부실기업의 부채 규모가 상당한 수준에 올라선 것이다.


또한 기관투자가는 고위험 자산에 손을 대고 있다. 통상 보험사나 연기금은 운용자산 규모가 커 보수적으로 수익을 추구하는데, 최근 저금리로 수익성이 나빠지자 공격적 투자전략을 취하고 있다. 일본 우체국과 노린추킨 은행(일본 농협)의 경우 고정자산까지 팔면서 대출채권담보부 증권(CLO) 투자를 확대했다. CLO는 신용등급이 낮은 대출채권만을 담은 고위험 자산이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이 외부 충격을 흡수할 ‘면역력’을 차츰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불확실성에 쉽게 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본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가계·기업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경기 둔화로 이어져 금융시장 침체를 부른다. 현재 모습을 드러낸 불확실성은 미·중 무역분쟁, 브렉시트, 홍콩사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재정정책 역할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윤경 국제금융센터 자본시장부장은 “독일처럼 통화정책 여력이 떨어진 국가를 중심으로 선택적 재정지출이 늘고 있다. 선진국은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와 기술혁신, 신흥국은 정책 투명성 제고와 복지 확대로 경기 반등을 노려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