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유족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백 교수 측은 “의사로서의 양심을 짓밟은 정치 판단”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부장판사 심재남)는 26일 백씨 유족들이 백 교수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백씨 아내에게는 1500만원을, 3명의 자녀에게는 1000만원씩 총 45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백씨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그는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317일간 머물다가 이듬해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당시 주치의였던 백 교수가 백씨 사망진단서에 외부 충격에 따른 ‘외인사’가 아닌 ‘병사’를 사망 원인으로 적으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서울대병원은 9개월 만인 2017년 6월 사인을 다시 외인사로 고쳤다.
백씨 유족은 백 교수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며 2017년 1월 백 교수와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재판부는 지난달 21일 백 교수와 서울대병원이 유족에게 위자료를 공동 지급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백 교수만 이 결정에 불복하면서 재판부는 이날 선고기일을 별도로 잡았다.
재판부는 “백씨는 물대포를 맞아 넘어진 뒤 의식을 회복 못한 채 사망해 외인사임이 명백하다”며 “사망진단서에 ‘병사’를 기재한 것은 의사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백 교수 측 대리인단이 “적어도 의학적 증거를 제출할 기회를 달라”며 변론 재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리인단이 “사법부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반발하자 재판부는 이들에게 퇴정을 명하기도 했다.
백 교수 측은 재판 뒤 ‘울분과 개탄, 또 하나의 사법 치욕의 날’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항의했다. 이들은 “재판부가 진실을 밝힐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채 판결을 강행한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백 교수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것은 1·2심 법원 판결이 다른 경우 1심 판사들에게 불법행위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