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편하게 살 뻔했다’… 보장된 공무원 신분 던진 사연

입력 2019-11-26 06:05 수정 2019-11-26 06:05
하마터면 편하게 살 뻔했다/신범철 지음, 프리스마, 253쪽, 1만6500원

“노무현정부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지만 정부가 표방하는 대북관과 동맹관이 내가 바라보는 관점과 차이가 있는데, 청와대에서 한번 근무해보겠다고 따라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하마터면 편하게 살 뻔했다 P. 180)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이 최근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되돌아보고, 경험담을 담은 ‘하마터면 편하게 살 뻔했다’를 최근 출간했다. 신 센터장은 1995년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후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외교부 정책기획관, 국립외교원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외교안보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충남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군사력 사용’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 센터장은 ‘하마터면 편하게 살 뻔했다’에서 외교안보분야 전문가로 발돋움하기까지 과정을 회상하면서 성실함과 소신을 가장 큰 미덕으로 꼽았다. 2003년 초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직을 제의받았지만 그는 고민 끝에 거절했다. 평소 자신의 관점과 다른 정부에 무리하게 들어가기보다 박사학위를 위한 공부를 택했다. 소신을 지킨 선택은 조지타운 박사학위를 마칠 수 있게 해줬고, 그는 외교안보분야에서 능력 있는 전문가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 막 북한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선배님들이 ‘야 국방은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니까, 네가 속으면 대한민국 모두가 속는 거야!’라고 교육하셨고, 나는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신중에 신중을 더하며 북한문제와 한·미동맹 문제를 바라봐왔다.”(하마터면 편하게 살 뻔했다 P. 179)

신 센터장은 이 같은 소신을 가지고 학자로서, 정부 관료로 활동해왔다. 그는 지난해 초 TV토론에 출연, 보수 정당 정치인 옆자리에 앉아, 상대로 나온 유명 학자와 정치인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석 확정으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시기였지만 신 박사는 현실적 관점에서 비핵화의 어려움을 진단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공무원 신분인 국립외교원 교수였고, 보수 정당 정치인의 옆자리에 앉아 토론에 참석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돼 내부에서 경고를 받았다. 이후 방송에서 위축되고 자기검열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 신 센터장은 3개월 가까운 고민 끝에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국립외교원 교수직을 던지고 나왔다. 당시 만 47세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적지 않은 나이였고, 세 자녀가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편한 삶을 버리고 ‘할 수 있다. 해야 한다’는 용기를 바탕으로 소신을 택했다.

“미국 유학을 가서 정확히 3년 3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매일을 직장생활처럼 보냈다. 9시 이전에 학교 도서관 도착, 10시에 문 닫으면 퇴근이라는 원칙을 꾸준히 지켰다.”(하마터면 편하게 살 뻔했다 P. 30)

신 센터장은 미국 유학 시절을 이같이 회상했다. 국방연구원에서 하루 2000장 복사를 시작으로 열정 넘치는 자세로 성실함을 인정 받았던 그는 미국 유학에서도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는 지금도 밤 11시까지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반칙과 위선, 비상식이 난무하는 시대에 성실함과 소신을 바탕으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학자의 인생 경험담은 작은 울림을 준다.

하마터면 편하게 살 뻔했다/신범철 지음, 프리스마, 253쪽, 1만6500원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