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 라이더. 누군가는 공유경제라 불렀고 또 누군가는 혁신이라고 떠들어댔다. 근사한 말처럼 들렸다. 과거의 노동자처럼 사장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원하는 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벌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배달 대행업체에 소속된 라이더들에게는 출퇴근 시간과 근로 조건이 정해졌다. 관리도 받았다. 사실상 노동자였지만 노동법의 보호는 받지 못했다. 소속돼 있던 회사가 ‘앞으로 돈을 덜 주겠다’는 메시지를 툭 던졌던 날, 그제야 실감했다. 라이더는 그들과 협상할 수 있는 노동자가 아니었다는 걸. 라이더는 신(新) 특수고용노동자(디지털 특고)로 불린다. 자영업자도 근로자도 아닌 제3의 범주다.
그들은 권리를 찾고 싶어 고용노동부로 향했다. 정부는 최근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했다. 배달앱 ‘요기요’ 라이더 5인방이 이끈 유의미한 변화다. 아직 요기요 라이더 전체가 노동자로 인정받은 건 아니지만 첫 걸음은 내디뎠다. 이중 이경희(33)씨의 일터를 지난 14일 찾았다. 이씨는 지난 8월 요기요에서 퇴사한 뒤 지난달부터 배달앱 ‘배달의민족’의 플랫폼 ‘배민 라이더스’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엇 떴다! 아, 놓쳤네”
지난 14일 오후 1시 이씨를 만났다. 정신 없이 바쁜 점심 배달을 마치고 그나마 한숨 돌리며 일하는 시간이었다. 국민일보 취재진은 이후 3시간 동안 이씨가 서울 성북구 월곡동 일대에서 배달일을 하는 현장에 동행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던 이날은 칼바람이 불었다. 그는 오토바이 옆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휴대전화에는 비오는 날에도 사용할 수 있는 커다란 방수 케이스가 씌워져 있었다. 손에는 장갑을, 얼굴에는 입에서부터 코까지 가릴 수 있는 검정색 복면을 꼈다. 사람부터 장비까지 중무장이었다.
이유는 금세 분명해졌다. 초겨울인데도 찬바람 탓에 온몸이 떨렸다. 잠시 취재차량 안에서 대기하자고 권했다. 그는 손사래쳤다. 콜이 뜨면 바로 출발해야했다. 라이더에게 속도는 돈이었다. 배달 속도만 말하는 게 아니다. 고객이 앱을 통해 배달을 요청하면 인근 모든 라이더들의 휴대전화에 콜이 들어온다. 이때부터는 완전경쟁이다. 뜨는 콜을 잡느냐, 못 잡느냐. 손가락 스피드가 곧 수입이었다. 평균적으로 대기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씨는 “대중 없다”고 했다.
이씨는 찬바람이 부는 길거리에 선 채 휴대폰 왼쪽 상단 ‘수락’ 버튼을 계속 눌렀다. 실패. 실패. 또 실패. 3번을 놓치고서야 비로소 콜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라이더는 음식을 받으러 가기 전 반드시 할 일이 있다. 결제 방식을 살펴야한다. 현금결제, 카드결제, 선결제 총 3가지다. 이번 건은 현금결제였다. 가게에서 음식을 찾을 때 라이더가 자기 돈을 음식점에 먼저 주고, 고객이 주는 현금을 라이더가 갖는 방식이다. 여기서 떨어지는 수수료는 평균 4500원 정도다. 배민 라이더스 처우는 업계 최상급이라고 했다. 통상 3000원 정도로 책정하는 곳이 많다. 거리에 따라 액수는 달라진다. 이씨는 ATM기로 이동해 일단 현금을 찾았다.
이제 달려야한다. 도착 예정 시간은 10분부터 최대 20분까지 라이더가 정할 수 있다. 가게까지는 20분 안에 가면 되는데 보통 10분 이내로 도착한다. 도착해보니 음식은 아직 포장 중이었다. 이씨는 가게 안에서 3분 정도 대기했다. 음식을 오토바이 박스에 넣고 취재진에게 도착지 주소를 일러줬다. 가게까지는 취재차량을 살피느라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음식이 실린 이상 그럴 수 없었다.
배달을 마친 이씨는 오토바이 옆에 다시 멈춰 섰다. “이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이씨가 “가긴 어딜 가느냐”며 웃었다. 그는 다시 휴대전화 왼쪽 상단 수락 버튼에 집중했다. “콜 뜰 때까지 기다려야죠. 라이더마다 대기하는 방법은 다 달라요. 하염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보통은 저처럼 휴대전화만 보고 있어요. 기름 값도 아깝고요. 대기하는 것도 노동이죠.” 대답을 하면서도 이씨 시선은 휴대전화에, 손가락은 수락 버튼 위에 고정돼있었다. 이어서 이씨 입에서 익숙한 탄성이 터져나왔다.
“엇, 떴다! 아아, 놓쳤다.”
라이더들은 수많은 고객들을 접촉하다보니 황당한 사건도 많이 겪는다. 이씨는 “별의별 손님들이 다 있다”며 웃었다. 가장 당황스러운 건 알몸으로 음식을 받으러 나오는 아저씨들이다. 이씨는 “라이더가 보통 남자라서 그런지 남성 고객은 샤워를 하다 말고 알몸으로 나올 때가 많다”며 “이럴 때는 같은 남자지만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배달을 시켜놓고 연락이 안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어떤 손님은 선결제까지 해놓고 집을 비우기도 한다. 이 경우 음식은 라이더가 1시간 동안 보관한다. 그 안에 연락이 되면 다시 가져다주고 그렇지 않으면 폐기한다. 이씨는 “이렇게 버려야 하는 음식이 생기면 가끔 먹기도 하지만 보통은 식거나 굳어 폐기한다. 처치곤란”이라고 말했다.
“엇 떴다, 아 놓쳤네.” “앗, 또 놓쳤다”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똑같은 혼잣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이씨는 다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 수 있었다. 그는 “콜을 연속으로 12번이나 놓쳐서 2시간이나 대기한 적도 있다”며 “하다하다 안 되면 모두가 기피하는 콜을 잡는다. 그럴 경우 동선이 무너져 하루 일정을 다 망치게 된다”고 말했다.
배달의 민족 측은 “콜이 많은 지역이 있고 많은 시간대가 있다. 원하는 만큼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해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하고 있다”며 “대기시간을 최대한 없앨 수 있을 만큼 콜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사라진 3시간…자본이 라이더에게 떠넘긴 비용
플랫폼 노동자는 도급계약을 맺는다. 노동시간에 대한 임금 대신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4대보험이나 주휴수당, 퇴직금은 없다. 얼마나 오랫동안 대기하든 배달을 해야 돈이 나온다. 대기시간은 노동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이씨 역시 도급계약을 맺은 개인 사업자다. 오직 배달건수로 계산해 수수료를 받는다. 따라서 배달하지 않고 대기한 시간은 이씨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플랫폼 업체 주장대로 이씨가 ‘원할 때, 하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회사는 “개인사업자이니 일한 만큼만 가져가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주장을 편다. 그러려면 그들을 관리하고 감독하지 말아야한다. 하지만 이씨는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한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있다. 그가 쓰는 오토바이도 매일 회사에서 받아서 회사로 반납해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를 쉰다. 휴무도 정해져있다. 누가 정했느냐 물었더니 “정한 건 나지만 정하라고 한 건 회사”라고 했다. 플랫폼 노동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율성이다. 원하는 대로 시간을 다룰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씨는 결코 시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이씨는 일감을 물어다주는 플랫폼에 로그인 하는 순간부터 로그아웃할 때까지 상시 대기상태다. 그나마 지금은 밥 먹는 시간을 보고하지는 않는다. 과거에는 식사시간까지 보고해야 했다. 휴가는 가본 적이 없다.
만약 누군가 일주일에 2번, 하루에 3시간만 일하는 계약을 맺겠다고 하면 가능할까. 이씨는 “주변에서 그런 경우는 못 봤다. 최소 일주일에 5일은 일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씨의 노동시간은 상시 할인된다. ‘자유로운’ 플랫폼 노동이기 때문이다. 이씨의 경우 1건 배달에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20분. 하루에 20건에서 많게는 30건까지 배달한다. 그렇게 대략 하루 10만원 안팎을 번다. 하루 평균 25건을 처리한다고 가정했을 때 약 8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실제 이씨가 일하는 시간은 11시간이다. 3시간이 빈다. 길거리에 선 채 콜을 기다리고, 콜을 잡고, 콜을 놓치는 시간. 다른 일을 하거나 쉬기는 커녕, 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수조차 없었던 시간들. 그 시간 비용을 자본은 몽땅 노동자에 떠넘긴 것이다.
배달의 민족 측은 “라이더와 최초 계약 당시 근무 시간과 요일을 등을 미리 정하는 것은 맞지만 변경하고 싶으면 회사에 알려주면 된다. 전체 배달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허용하고 있다. 하루 전에 휴가를 내는 등 직전에 통보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 휴가 역시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퇴근길 배달하고 용돈 벌자? 투잡족 유혹하는 이유
이씨는 “라이더들의 수입이 쏠쏠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전했다. 플랫폼 업계 수수료는 수시로 재책정되고는 했다. 일방적이었다. 초기 라이더 입장에서 수수료는 급격히 악화했지만 최근에 입문한 라이더의 경우 처우는 조금씩 나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씨는 “상대적이다. 언제 이 세계에 들어왔느냐에 따라 누구에게는 좋아지고 누구에게는 나빠졌을 것”이라며 “초기에 비하면 아주 나빠진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지금 라이더들에게는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중이다. 현재 업계는 전문 라이더보다 일반인 라이더, 즉 투잡족을 모집하는데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배달의 민족은 지난 7월 일반인이 자신의 운송수단(자전거·전동킥보드 등)을 활용해 배달하는 ‘배민 커넥트’를 출시했다. ‘퇴근길에 배달하고 용돈 벌자.’ 이런 콘셉트로 지갑 얇은 직장인들을 유혹한다. 프로모션은 파격적이다. 일주일 동안 하루 3건만 배달해도 1만원을 얹어준다. 초보 배달원은 15초나 먼저 콜을 받는다. 콜수가 곧 수입이라는 걸 고려하면 굉장한 특혜다. 이씨는 “각자 휴대전화에 뜨는 콜만 볼 수 있다”며 “그래서 우리로서는 누가 콜을 더 먼저 받는지, 많이 받는지, 회사가 누구를 우대하는지 같은 걸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업체들이 일반인 배달에 집중하는 까닭은 더 빠르고 쉽게 인력 풀을 형성하기 위해서다. 이런 프로모션을 통해 라이더의 데이터가 플랫폼에 차곡차곡 쌓이면 ‘당근’은 사라질 게 틀림없다. 당근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앞으로 라이더 처우는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공급이 확대됐으니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현재 기업에게 중요한 건 빅데이터다. 많은 비용을 투자해 라이더 인력풀을 확보하고 수반되는 고객 데이터를 통해 주문 패턴을 파악하는 과정”이라며 “플랫폼 기업 초기에 국제적 자본이 유입된다. 금융자본이 투자하는 건 데이터를 소유하되 생산수단은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간 단위로 쓰고 버리는 노동자의 등장
업계는 노동의 유연화를 내세웠다. 과연 그럴까. 최근 한국노동연구원 노동패널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 74.2%는 지난 3개월 동안 60일 이상 일했다. 하루에 평균 5시간 이상~9시간 미만 일한 사람은 54.3%로 절반을 넘었다. 9시간 이상 일하는 이들은 전체 3분의 1(34.5%)이 넘는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부업일 리 없다. 업계는 부업을 하며 원하는 시간만큼만 일할 수 있을 거라고 홍보했지만 플랫폼 노동자 74.0%는 소득 절반 이상을 한 회사에서 얻고 있었다. 플랫폼 일자리를 주업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다. 그 노동은 결코 유연하지 않다. 주업이 끝난 후 ‘드라이브하듯 드라이빙’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플랫폼 기업 측은 노동의 유연화를 원하는 게 오히려 노동자라고 반박한다. 노동자들이 기본급에 얽매이기 싫어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배민 라이더스도 처음에는 정규직 라이더를 채용했지만 이후 지입제로 바꿨다. 변화는 라이더들의 요구였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저임금 노동자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정규직화에 대한 거부 반응으로 설명한다. 이들에게 주어질 고정급은 통상 먹고 살기 빠듯한 수준이다. 따라서 저임금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면 더 받을 수 있는 방식의 지입제를 선호하게 된다. 당신 앞에 나쁜 것과 더 나쁜 것이 있다. 당신이 더 나쁜 것을 피해 나쁜 것을 선택했다면 이건 자발적 선택인가.
비정규직이 사회에 안착하던 1990년 초반이 딱 이랬다. 사람들은 당장 일자리가 필요했고 회사는 쉽게 고용하고 더 쉽게 해고할 인력이 필요했다. 회사는 노동의 유연화를 앞세워 인력을 모았다. 일단 임금을 후하게 지급해 사람을 모은 뒤 인력풀을 갖추자마자 임금을 후려쳤다. 어쩔 수 없이 노동 시간은 늘어났다. 플랫폼 노동은 이보다 더 유연하다. 그래도 비정규직은 노동자 취급이라도 받았다. 플랫폼 노동자는 그마저도 아닌 셈이다.
박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은 비정규직에서 한 걸음 나간 형태다. 근로기준법상 명시된 연차, 주휴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이나 해고하는 절차도 지킬 필요가 없다”며 “결국 시간 단위, 초 단위로 사람을 쓰고 버릴 수 있다는 게 플랫폼 노동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플랫폼 위의 노동자 55만명
지금까지 디지털 특고는 노조할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일방적으로 바뀌는 근무 조건과 수수료 체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누구에게는 콜을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아도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괜히 나섰다가 눈밖에 나면 불량콜만 받는 문제 라이더가 될 것 같았다. 요기요 5인방의 노력 덕에 이제 문은 열렸지만 갈 길은 멀다.
윤애림 서울대학교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한국은 ‘특고’라는 제3의 범주를 도입했지만 실패했다”며 “미국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될 때 우버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오래 싸웠다. 한국은 노동조합법으로 보호받지 않는 노동자들이 단체교섭을 시도하기만 해도 형법으로 처벌한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5만명이 플랫폼 위에 섰다. 노동법은 언제쯤 도착할까.
박민지 기자, 영상=최민석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