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엿새째에 접어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육신의 고통을 통해 나라의 고통을 떠올린다”며 단식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앞에서 농성하겠다는 뜻도 꺾지 않고 있다. 황 대표가 단식에 나선 배경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문제를 풀 주체가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황 대표와 만나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지만 답을 얻지 못한 채 돌아갔다.
황 대표는 25일 페이스북 글에서 “고통은 고마운 동반자다. 저와 저희 당의 부족함을 깨닫게 한다”며 “자유와 민주와 정의가 비로소 살아 숨 쉴 미래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악화된 건강 상태를 의식한 듯 “잎은 떨어뜨려도 나무 둥지를 꺾을 수는 없다”며 “몸은 힘들어도 정신은 더욱 또렷해진다”고 결의를 드러냈다.
단식 닷새째부터 급격히 기력이 떨어진 황 대표는 이날 혈압이 정상범위 밖으로 떨어지고 탈수 증세에 시달리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경호상 문제로 방한 설비 설치가 불가능한 청와대 인근에서 풍찬노숙 형태의 농성을 하다 보니 체력 소모가 크다고 한다. 황 대표는 오후부터 외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한 채 몸을 추스르는 데 집중했다. 오전 최고위원회의도 나경원 원내대표가 대신 주재했다.
한국당으로서는 공수처법과 선거법 개정안을 저지할 마땅한 방도가 없는 터라 단식 국면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당 핵심 관계자는 “결국 이 모든 것이 문 대통령과의 싸움 아니겠느냐”며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주면 된다. 출구책은 결국 대통령 하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당 일각에선 황 대표가 패스트트랙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는 시점까지는 버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오후에 단식 현장을 찾은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황 대표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정치라는게 협상이다. 우리도 하나(공수처법)는 내주고, 선거법은 정상적으로 협의하는 게 맞다고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강기정 정무수석을 현장에 보내 만류 의사를 전달했던 청와대는 태세를 바꾼 모습이다. 김광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당대표 비서실장인 김도읍 의원에게 문자를 보내 “규정상 청와대 앞은 천막 설치가 불가능한 지역이니 자진 철거해 달라”고 요구했다. 청와대 관계자가 행정대집행 가능성까지 거론했다고 김 의원은 전했다. 황 대표는 방한용으로 설치한 비닐 천막 안에서 철야농성을 진행 중이다.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상황을 고려할 때 장소 이동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 의원은 “천막 철거가 문 대통령의 뜻이라면 그때 가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오전에 단식 현장을 찾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며 단식 중단을 요청했다. 황 대표가 머물고 있는 텐트 안에서 5분 정도 대화를 나눈 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빨리 단식을 중단하고 저랑 대화 좀 하자고 황 대표에게 말씀드렸다”며 “황 대표가 작게 말해 답을 듣지 못했다. 기력이 없어 거의 말을 못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협상을 통해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황 대표가 단식에 들어가 모든 것이 다 막혀버렸다”며 “지금은 이런 식으로 성의를 표하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이언주 무소속 의원도 단식 현장을 방문했다.
심우삼 김용현 신재희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