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가 적발된 뒤에야 비로소 돈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것이다. 구속을 피할 사유가 될 수 없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부장검사 김종오)는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스(옛 한국타이어) 대표의 수사와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국민적 상식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외자금 약 8억원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 대표 측은 지난 21일 영장심사에서 “피해 금액을 모두 변제했다”는 취지로 호소했다. 8억원 중에는 납품 대가로 하청업체로부터 매월 수백만원씩 챙긴 약 5억원도 들어 있었다.
조 대표 측 주장은 영장전담 판사의 큰 공감을 얻지 못했다. 검찰은 공정거래 질서를 깨고 상납을 받은 ‘갑질’ 자체가 문제이며, 범행이 드러난 이후에야 피해 회복이 시도된 사실을 짚었다. 그토록 수월히 변제할 수 있는 피해였다면 오랜 기간의 갑질이 오히려 의아하다는 지적이었다. 누구나 알 만한 반성의 계기는 국세청의 범칙조사와 검찰의 강제수사였다. 조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발부됐다.
조 대표의 피해 변제 주장에 검찰 내부에서는 2015년 4월 구속영장 재청구 끝에 구속됐던 장세주 전 동국제강 회장의 사건이 회자됐다. 80억원대 비자금 조성, 300억원대 배임 혐의가 드러난 장 전 회장은 전세기를 타고 해외 원정도박을 즐기던 이였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영장심사를 5시간 앞두고 회사 법인계좌에 106억원가량을 무통장입금 방식으로 입금했다. 이 역시 피해를 변제했다는 호소였다.
장 회장은 첫 번째 구속영장을 피했지만 오히려 법원이 ‘유전불구속(有錢不拘束)’ 비판에 직면했다. 장 회장은 검찰이 기각 사흘 만에 영장을 재청구하면서 다시 구속됐다. 장 회장은 두 번째 구속영장을 앞두고도 12억원의 횡령액을 ‘기습 변제’했지만 소용없었다. 당시 검찰은 “범행이 드러나고 나서야 변제하는 건 더욱 큰 문제”라고 했다. 형사처벌 코앞에 가서야 ‘보여주기’ 식으로 피해 회복에 나서는 것이 과연 진정한 태도냐는 비판이었다.
횡령·배임 등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들이 검찰 수사 착수 이후에야 돈을 제자리에 돌려두려 애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피해 액수가 구속과 실형 선고 여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렇듯 속이 보이는 피해 회복의 몸짓에 법조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25일 대법원 양형연구회가 연 ‘화이트칼라 범죄와 양형’ 심포지엄에서도 ‘손해액 6억원 중 4억원이 회복된 경우’와 ‘손해액 4억원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 중 어떤 것이 더욱 중하냐는 물음이 제기됐다.
재계는 “경제 규모의 확대, 화폐가치 변동에도 불구하고 처벌 규정상 가액 기준은 변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편다. 신병처리가 검토되는 부정한 자금의 크기 역시 커져야 한다는 논리다. 재계의 주장이 일견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국민적 시선엔 부합하지 않는다는 법조계 반응도 여전하다. 조 대표 측은 검찰 수사와 영장심사에서 부외자금 8억원을 두고 “자산가치에 비춰 미미한 정도”라는 취지의 주장을 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25일 조 대표를 구속 뒤 처음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의 차명계좌로 흘러 들어간 돈이 개인적으로 사용된 사실과 관련한 추가 조사였다. 뒷돈의 상당부분은 조 대표의 유흥비로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부유한 범죄자들이 범행 적발된 후에야 돈을 돌려놓은 게 감경 사유가 돼서는 안 된다”며 “그게 국민들의 상식”이라고 말했다.
구승은 박상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