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주목한, 홍콩 시위 이후 첫 선거에서 홍콩 민심은 범민주파를 택했다. 반면 친중파는 압도적인 표차로 굴욕적 패배를 당했다. 홍콩 구의원 452명을 뽑는 지방선거에서 25일 홍콩 시위대의 지지를 받는 범민주파가 압승을 거두면서, 양 진영을 대표하는 후보들의 명암도 엇갈렸다.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은 지미 샴 민간인권전선 대표다. 그는 지난 6월 이후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운동을 이끌어왔다. 구의원에 도전한 샴 대표는 샤틴구 렉위엔 선거구에서 3283표를 얻어 2443표를 얻은 친중파 후보를 가볍게 따돌렸다. 샴 대표는 지난달 17일 괴한들에게서 쇠망치 공격을 받는 등 선거운동 기간에만 두 차례나 테러를 당하며 고초를 겪기도 했다.
2014년 ‘우산혁명’을 이끌었던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은 이번 선거에 출마 금지 당했지만, 그를 대신해 출마한 캘빈 람 후보가 당선됐다. 웡 비서장은 이번 구의원 선거에 출마하려 했지만,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그의 입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홍콩 헌법인 기본법에 대한지지, 홍콩 정부에의 충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람 후보는 웡 비서장을 대신해 사우스 호라이즌 웨스크 선거구에 출마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웡 비서장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선 직후 두 사람은 함께 사우스 호라이즌 역에서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반면 대표적인 친중파 후보인 주니어스 호(허쥔야오)는 낙선의 쓴맛을 봤다. 현역 입법회(국회) 의원이자 구의원인 호 의원은 튄문구의 록차이 선거구에서 2278표를 얻어 3474표를 얻은 민주당 후보에게 1000표 넘는 차이로 대패했다. 호 의원은 패배 직후 페이스북에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졌다”며 “올해 홍콩은 완전히 미쳤다”라고 분풀이를 했다.
호 의원은 지난 7월 21일 위엔룽 지하철역에서 발생한 ‘백색 테러’를 두둔해 홍콩 시위대의 분노를 샀다. 당시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던 홍콩 시민들은 역에서 미리 대기하던 흰색(친중 시위대가 주로 입는 색깔) 티셔츠 차림의 괴한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호 의원은 흰옷을 입은 남성들과 거리에서 악수하면서 “고맙다”라고 말한 영상이 퍼졌다. 호 의원은 백색 테러 두둔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달 거리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도중 한 남성으로부터 흉기 피습을 당하는 등 홍콩 시위대의 분노를 가라앉히진 못했고, 선거에도 대패하게 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주니어스 호는 친정부 진영을 향한 역풍의 가장 눈에 띄는 희생자”라고 설명했다. 명보는 호 의원뿐만 아니라 홀든 차우, 미셸 루크 등 친중 성향의 건재파의 유력 정치인들도 줄줄이 낙선했다고 전했다.
친중파 최대 정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은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 패배를 공식 인정했다. 민건련 당수인 스태리 리는 이날 주석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친중 진영이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홍콩 특별행정구의 지도자인 캐리 람 행정장관도 정치적인 위기를 맞게 됐다. 빈과일보는 건제파 내부에서 “이번 선거가 인재”라는 목소리가 나오며 람 장관에게 화살을 돌리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람 장관은 앞서도 홍콩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안팎으로 퇴진 압박을 받아왔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