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팀 소속 성인 운동선수 10명 중 6명이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성폭력도 포함됐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7월 22일부터 8월 5일까지 직장운동부를 운영하는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40여 개 공공기관 소속 실업 선수 1251명과 실업 선수 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그 결과 성인 선수 33.9%는 언어폭력을 경험했고 15.3%는 신체폭력을 겪었다. 성폭력 피해자는 11.4%로 집계됐다.
이번 결과는 인권위가 4일 발표한 ‘초중고 학생 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당시 학생 선수 언어폭력 경험은 15.7%였고, 신체폭력과 성폭력 경험은 각각 14.7%, 3.8%였다. 응답자 8.2%가 ‘거의 매일 맞는다’고 응답했고, 67.0%가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한 응답자는 “이야기를 하다가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졌다”며 “인생에서 가장 큰 모욕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지도자들이 성인인 선수에게 ‘야, 너 일루와. 이 XX’ ‘이X아’ 이런 호칭을 쓴다”며 “성인 선수에게는 존칭을 쓰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폭력 가해자로는 남성 선수에게는 선배 운동선수가 58.8%, 여성 선수는 코치가 47.5%로 가장 높았다.
성폭력 문제도 심각했다. 한 30대 여성 선수는 “감독이 시합 끝나고 카메라가 집중됐을 때 자신에게 가슴으로 안기지 않았다고 화를 냈다”며 “‘선생님을 남자로 보느냐, 가정교육을 잘 못 받은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대 여성 선수는 “유니폼을 입으면 옷이 붙어 몸이 드러나는데 이를 성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신체 모양·몸매 관련 농담을 듣는 경우 6.8% ▲불쾌할 정도의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당하는 경우 5.3% ▲신체 일부를 강제로 만지게 하는 경우 4.1% 등으로 집계됐다. 성폭행을 당한 선수도 3명(여성 2명, 남성 1명)으로 확인됐다.
사생활 침해 문제도 지적됐다. 실업 선수 86.4%가 합숙소 생활을 경험했다. 선택권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지도자나 선배 선수와 한 집에 살아야 해 개인 공간은 물론 프라이버시도 보장되지 않았다. 한 20대 선수는 “밤에는 숙소에서 외출을 마음대로 못 하고 시합이 다가오면 주말에도 못 나갔다”며 “교도소처럼 생활했다”고 전했다.
정신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선수도 많았다. 한 20대 후반 선수는 “우울증인지도 모르고 ‘내 정신력이 약하니 극복해야지’라고 생각했다”며 “대부분의 선수는 자신이 우울증인 걸 모른다”고 말했다.
여성 선수는 결혼하거나 임신 계획을 세우면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거나 은퇴를 종용받는 등 일과 가정의 양립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인권위는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성인 선수임에도 일상적인 폭력과 통제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여성 지도자 임용을 늘려 성별 위계관계 및 남성 중심 문화의 변화를 통한 인권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허정훈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직장 운동선수 인권 교육과 정기적 인권실태조사, 가해자 징계 강화 및 직장 운동부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 합숙소 선택권 보장, 표준근로계약서 마련, 공공기관 내부 규정(지침) 및 지자체 직장운동부 관련 조례 제·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관련 부처 및 대한체육회 등에 실업팀 직장 운동선수의 인권 보호 방안을 마련하도록 할 예정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