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정당으로 쳐들어가서 정치를 점령해라.”
지난 24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국민일보 인터뷰가 끝날 무렵, 지금 청년세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이 의원이 한 말이다. 그는 “정치를 해야 세상을 바꿀 힘을 갖게 된다”며 “청년들이 정치를 안 하면 삶이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예를 들었다. “미국에서 청년들한테 인기 많은 정치인을 다른 말로 ‘루저’라고 한다. 즉 청년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아 인기가 많아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참여해야 정치권의 ‘청년 감수성’이 생긴다는 말이다.
부끄러웠다. 그동안 청년세대는 얼마나 자기 목소리를 냈나. 대학가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언젠가부터 부끄러움이 됐다. 정치혐오를 유발한 국회의원들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그 이유가 청년세대의 정치 무관심을 정당화하진 못했다.
한편으론 ‘정말 청년세대의 잘못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와 무관하게 ‘N포세대’와 ‘헬조선’을 만든 장본인은 누구인가. 2030세대의 ‘노오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국회는 사회적 성공을 거둔 5060세대가 ‘명예로운 사회활동의 마무리’를 위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러 오는 곳쯤으로 여겨진다. 부모 잘 만나면 성공하고, 미래가 아니라 당장 내일이 급한 세상에서 청년들에게 ‘정치’는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국회 문턱은 청년들에게 너무 높다. 청년세대에게 정치권은 쉽사리 진출을 꿈꿔볼 만한 자리가 결코 아니다.
이 의원이 “2030 세대의 정치 참여를 위해 Stage Craft(무대연출)를 잘해야 한다. 길을 열어주고 터줘야 한다”고 한 말은 그래서 공감된다. 청년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을 비판하기 이전에 청년세대가 정치권이라는 무대에 설 자리는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역대 선거 때마다 청년은 주목받았지만 늘 들러리였다. 현재 20대 국회의원 295명 중 30세 미만 국회의원은 없고, 31~40세는 김수민(바른미래당)·신보라(자유한국당)·정은혜(더불어민주당) 의원 3명뿐이고, 41~50세 의원도 19명 밖에 없다. 국회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데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은 소수인 셈이다.
5060세대도 청년을 대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5060 세대에게 ‘남북단일팀’은 공정이었지만 청년세대에게는 공정이 아니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 조 전 장관 본인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그런 조 전 장관을 두둔하고 엄호하느라 바빴지만, 청년 세대에겐 그저 상대적 박탈감을 안겼을 뿐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앞다퉈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정의당까지 앞다퉈 청년 표심을 잡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위해 선심성 공약을 쏟아낼 게 아니라, 청년들이 직접 뛰어들 무대를 얼마나 잘 준비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청년세대가 자신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권 무대로 뛰어들어야 한다. 공감의 대상 자체가 다른 세대들에게 ‘청년을 대변해달라’고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청년들이 정치권에 뛰어들지 못하게 하는 원인에 대해 비판하고, 개인이 아닌 청년이라는 ‘집단세력화’를 이뤄야 한다.
청년정치인인 한 지인은 자신의 불출마 사실을 밝히며 “열심히 해봤는데 이제는 솔직히 지친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순장조’로 표현했다. 출마도 자신의 온전한 뜻이 아니란 얘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도 좋을 것 같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청년 정치인에게 청년들 스스로 힘을 실어주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정치무대를 만들도록 기성 정치권을 향해 다 같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침묵하면 할수록, 청년의 삶은 느리게 바뀐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