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인터뷰] “민주당, 대통령 뒤에 그만 숨어야”

입력 2019-11-25 07:30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86세대 용퇴론’에 대한 당사자들의 반발에 대해 “실망스럽다”며 “386세대가 당대표와 대통령까지도 배출해야 된다는 것부터가 특권의식”이라고 비판했다. 또 “모든 세대가 당대표와 대통령을 배출한 게 아니지 않느냐”며 “386세대는 그걸 해도 된다는 면허를 받았느냐”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최근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현 정치 체제에 대한 쓴소리와 함께 정치혁신을 위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 왔다. 특히 여당 내 다수인 386세대와 관련,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인정하자며 용퇴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당대표나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세대인 점을 들어 “우리가 뭘 누렸느냐”고 반발하고 있는데, 24일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를 재반박한 것이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의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셀프 개혁이 이뤄진 적이 없었다”며 “그나마 불출마 선언을 했으니 이 정도로 정치 판갈이를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이 의원은 역대 가장 일 안한다는 평가를 듣는 20대 국회에 대해 “국회 선진화법이 도입된 뒤 야당의 비토권이 강해지며 식물국회가 됐다”며 “패스트트랙을 해보니 껍데기는 (여전히 싸우는) 동물국회인데 내용은 식물국회인 게 드러났다. 진짜 동식물국회”라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 이후 여당이 된 뒤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민주당을 향해서도 고언을 내놨다. 이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생긴 탄핵연대를 개혁 입법의 에너지로 바꾸지 못한 것은 실책이었다”며 “전환할 때를 놓친 것은 아쉽다”고 했다. 이 의원은 “여권의 한 축은 대통령, 한 축은 당”이라며 “양 날개로 날아야 하는데, 자꾸 당이 대통령 뒤에 숨기만 하는 건 대통령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대통령에게 짐을 더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당이 총선을 앞두고 원 팀(One team)을 강조하는데, 워낙 목소리를 잘 맞춰가고 있는 만큼 이제는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대통령 주변엔 반드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참모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청와대에는 그런 참모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 고조 유방에겐 장량(張良)이, 당 태종에겐 위징(魏徵)이라는 참모가 있었고,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옆에는 루이 하우(Louis Howe)가 있었지만, 지금 문재인 대통령 주변엔 그런 참모들이 안 보인다는 얘기다.

“정치작동 방식 안바꾸면 누가와도 좋은 정치 못 한다…정치 판갈이 해야”

이 의원은 ‘초선 비례대표가 무엇을 하겠느냐’는 고정관념이 팽배한 국회에서 이 의원은 꾸준히 존재감을 입증해 온 초선 비례의원이다. 지난해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을 공개해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고, 원내수석부대표와 국방위원회 간사 등 원내 주요 직책도 맡았다. 정치토크쇼 ‘썰전’ 등 방송 출연으로 쌓은 인지도를 토대로 대중과 꾸준히 소통해 왔다.

과거 JTBS 방송 썰전에서 기무사 문건 논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철희 의원. 출처=JTBC

그랬던 그가 지난달 15일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정치작동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누가 들어와도 좋은 정치를 하기 어렵다”며 의원 물갈이를 넘어선 ‘정치 판갈이’를 주장하고 있다. 이날 한 시간 반 동안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는 386세대 용퇴론은 물론, 20대 국회의 문제부터 대안으로서의 판갈이까지 거침없이 발언을 이어갔다. 이하 일문일답.

-정치 판갈이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정당 개혁, 국회 개혁, 헌법 개혁(개헌)까지 일련의 정치 혁신을 통해 그야말로 일하는 국회, 국민과 같이 가는 정치가 작동하게끔 하는 것을 판갈이라고 본다. 내년 총선에서 국회에 새로운 목소리가 들어오도록 만들어주는 것을 시작으로 다음 대선까지 2년 동안이 정치를 혁신할 골든타임이다. 이번에 못 바꾸면 한국정치는 영원히 국민 불신을 받을 것이다.”

-골든타임 동안 안에서 바꿔야지 왜 밖으로 나가려 하나.

“불출마 선언을 했기 때문에 이 정도 이야기 할 수 있는 거다. 자기 것을 쥐고 있으면서 이렇게 하자고 하면 누가 믿어 주겠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를 셀프개혁한 예는 없었다. 마지못해서 하는 데까지 내몰려서, 시민적인 동력이 형성돼 ‘진짜 안 바꾸면 죽는다’, 이렇게까지 가야 바뀔 수 있다. 난 국회에 들어오기 전 대중과 소통했으니 밖에서 치어리더처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던지는 역할이 맞다고 생각했다.”

386 세대 ‘한 번만 더(One more)’ 외치지만 ‘이제 그만(No more)’해야 할 때

-본인도 386세대면서, 386한테 물러나라고 하고 있다.

“지금 2030세대가 힘든 것은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이렇게 망가뜨린 뒤 해결도 우리가 하겠다? 이건 안 된다. 우리(386세대)는 에너지도 고갈됐고 상상력도 소진됐으니 너희가 와서 하라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닌가. 2030세대를 대거 영입해서, 이들이 바꿀 수 있는 정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꿈은 버리고, 이제 아버지 행세를 그만하라는 것이 지금 청년세대의 요구다.”

-386세대의 공과를 평가한다면.

“6월 항쟁을 통해 ‘87년 체제’를 만든 것이 386세대의 역사적 기여다. 촛불시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87년 체제는 끝났고 동시에 386세대의 소명도 끝났다. 민주화를 이뤄냈고, 민주화로 선출된 대통령도 국민 저항으로 물러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 정도면 다른 세대가 누리지 못한 영광을 누린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386세대는 실패했다. 2030세대가 지금 헬조선(지옥과 조선의 합성어)에서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N포 세대(모든 걸 포기하는 세대)가 돼 고통 받고 있는 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우리의 국정 운영 결과다. 이에 대해 386세대가 답을 못 내고 있는 건 결국 실패이며 숙제를 남긴 것이다. 그러니 영광은 남기고 숙제는 다음 세대가 하도록 하자는 거다. 공유경제, 데이터 경제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386세대의 정치문법과 세계관으로는 한계가 있다.”

-당내에선 386세대가 할 일이 남았다는 반발도 적지 않다.

“당사자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곧 위기의식의 발로다. 여전히 수구세력이 강고하다는 것도 일리는 있지만, 과연 낡은 체제, 군부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는 데 치밀했냐고 묻고 싶다. 국회 국방위원회에 가서 위수령이 아직 살아있는 걸 보고 놀랐다. 문재인정부 들어와 지난해 국무회의에서 없앴다. 도대체 그동안 386세대가 국회에 들어와서 무얼 했나. 국가보안법도 못 없애고, 대체 입법도 못 만들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회의원으로서 치밀하게 우리 속에 남아있는 군부 정권 잔재 청산, 특히 법령으로 존재하는 잔재 청산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세대는 언제나 ‘한 번만 더(One more)’를 외치는데 ‘이제 그만(No more)’이나 ‘충분하다(Enough)’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떠날 때는 조금 일찍 떠나도 되지, 어떻게 기차 시간 딱 맞춰서 집에서 나서느냐”며 “학생운동할 때부터 형성된 386세대만의 특별한 소명의식이 지금까지 활동하는 원동력이 됐지만, 그 소명의식이 마냥 우리(386세대) 것만 될 순 없다”고 했다.

20대 국회, 황교안 단식처럼 극단의 선택만 남아…패트 해보니 껍데기는 동물국회, 내용은 식물국회

-20대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계속 죽기살기로 싸우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불쑥 단식을 하는 게 지금의 정치문법이다. 황 대표만 그런 게 아니라 과거에 우리도 그랬다. 협상과 타협을 통해 정치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려 하지 않고 정치인이 반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뭔가 하려 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밀어붙이는 운동 방식을 유지하는 것, 그 자체가 반(反)정치다. 너무 익숙하게 반정치의 모습이 벌어지고 있으니, 황 대표도 저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뭔가를 보여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20대 국회에서 마주친 정치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20대 국회,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연말까지 패스트트랙 처리를 놓고 전운이 감돈다.

“과거 동물국회 때는 여당이 강행처리를 하면 됐는데 이제 국회 선진화법이 도입되며 5분의 3 조항이 생기니 제1야당이 반대하면 아무 것도 못 한다. 비토권이 강하다. 그래서 식물국회가 됐는데 보기엔 나아 보일지 몰라도 국민 입장에서 유불리를 따지면 동물국회가 낫다. 싸우든 어떻든 결과는 나왔는데 이제는 안 싸우고 아무 결과도 안 나온다. 패스트트랙을 해보니 껍데기는 동물국회인데 내용은 식물국회인 게 드러나더라. 진짜 동식물국회다.”

-여당이 된 뒤 민주당의 행보를 평가해 달라.

“탄핵을 거치고 대선 이후 형성된 ‘탄핵연대’를 개혁입법의 에너지로 바꾸지 못한 것은 아쉽다. 적폐청산을 하다 어느 순간 전환을 했어야 하는데 때를 놓친 것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 그 전환을 빨리 해야 한다고 말해 왔지만 안 됐고, 개혁입법연대를 해보는 데까지 해 보다 총선을 통해 돌파할 수밖에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당이 총선을 앞두고 계속 ‘원팀’을 강조하는데 ‘창조적인 원팀’이어야지 ‘침묵하는 원팀’이 돼선 안 된다. 17대 열린우리당 시절 트라우마가 커서 그동안 충분히 자제해왔지만, 총선을 앞두고 당이 활력이 넘쳐야 하고, 역동성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당이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나.

“정당의 활력이나 역동성은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고, 현직 대통령이 있지만 차기 주자들이 보이기 시작해야 역동성이 보인다. 그래서 이낙연 총리가 빨리 당으로 와야 한다. 선출된 당 대표와 최고위원이 중요한 의사결정은 하되, 대외적인 목소리를 내는 건 차기 주자 등이 나설 수 있게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 여권의 한 축은 대통령, 한 축은 당이다. 양 날개로 날아야 하는데, 자꾸 당이 대통령 뒤에 숨기만 하는 건 대통령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대통령에게 짐을 더하는 것이다.”

-지금 청와대 참모들은 잘 하고 있다고 보나.

“청와대는 대통령 어젠다를 통해 국정을 끌고 가면서 컨트롤타워, 관제기능을 잘 해야 한다. 대통령 주위에 어떤 사람이 있어야 할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능력 있는 참모들은 널렸지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롤 모델은 한나라 유방한테 언제든지 노(No)라고 말했던 장량(張良) 같은 사람이다. 당 태종에게도 위징(魏徵)이라는 참모가 있었고,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옆에는 루이 하우(Louis Howe)가 있었다.
지금 청와대에는 노(No)라고 말하는 참모가 없다. 그건 단순히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논리로 설득하든 대안을 제시하든 대통령이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 ‘나는 반대했으니 책임없어’가 아니라 반대한다면 어떻게든 (해당 인사 임명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회엔 누군가를 대표할 사람들이 들어와야…청년들이 정치 안 하면 청년들 삶은 바뀌지 않는다

-내년 총선에 어떤 인물이 들어와야 하나.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로 공천심사위원회를 만들어놓고, 여론조사를 해서 인지도 있고 스펙 좋은 사람을 쏟아내는 ‘떳다방 스펙 공천’을 해선 안 된다. 스펙이나 인지도가 아니라 누군가를 충실히 잘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들어와야 하고, 비례대표를 대폭 늘려야 한다. 82년생 김지영, 95년생 이남자(20대 남성), 우리 옆의 김용균씨, 제2의 진대제, 탈북민과 하재현 중사까지 누군가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국회에 와서 잘 대표하면 그게 정치가 잘 돌아가는 것이다.”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격려나 혹 채찍질 같은 메시지가 있다면.

“채찍질 하는 건 꼰대다.(웃음) 정당으로 쳐들어가서 정치를 점령해라. 정치를 잡아야 세상을 바꿀 힘을 갖게 된다. 눈으로 보면 안다고 생각하지만 386세대는 2030세대 아픔을 잘 모른다. 단적인 예로 우리에겐 공정이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북단일팀이었지만, 젊은 세대에겐 아니었다. 그게 단적이다. 정치를 외면하고 다른 데서 답을 찾아선 각자도생의 시대밖에 되지 않는다. 청년들이 정치를 안 하면 청년들의 삶은 안 바뀐다.”

김나래 박재현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