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투표소마다 ‘장사진’ 열기…‘홍콩 시위’ 평가 시험대

입력 2019-11-24 17:26 수정 2019-11-24 17:31
이른 아침부터 투표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홍콩 시민들.연합뉴스

홍콩 민주화 시위의 분수령이 될 구의원 선거가 순조롭게 시작됐다. 이번 선거는 6개월째 거리에서 반정부 투쟁을 하는 시위대와 이를 강경 진압하는 홍콩 정부에 대한 민심을 확인하는 시험대로 주목받고 있다. 또 행정장관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선거인단 일부도 이번 선거를 통해 결정되면서 향후 홍콩 정세에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24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18개 선거구에서 구의원 452명을 뽑는 선거가 이날 오전 7시30분(현지시간) 홍콩 일반 투표소 610여곳과 전용 투표소 23곳 등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투표는 이날 오후 10시30분까지 진행되며 선거구별 당선자는 25일 새벽부터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모든 선거구에 복수 후보가 출마해 경쟁을 벌였다.

오전 투표가 시작되자 투표소마다 아침 일찍부터 유권자들이 길게 늘어서 순서를 기다리는 등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워낙 줄이 길어 사틴 지역의 한 투표소의 경우 투표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위니 렁(45·여)씨는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경찰의 시위대 진압방식을 보고 이번에는 꼭 투표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91세 어머니와 함께 투표하러 온 메이 호(61·여)씨는 “우리는 문화대혁명 같은 어두운 시대를 거치면서 폭력을 충분히 경험했다”며 “사회는 평화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인 조슈아 웡(22)은 투표를 마친뒤 기자들과 만나 “경찰의 야만을 중단시키고, 자유 선거를 요구한다면 지금은 투표할 때”라고 호소했다.

이번 선거에서 등록한 유권자는 홍콩 전체 인구(739만 명)의 55% 가량인 412만 명으로 2015년 369만 명보다 크게 늘었다. 특히 18세~35세의 젊은 유권자 등록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는데, 이들은 친중국 성향의 정치인을 축줄하자는 시위대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SCMP는 분석했다.

홍콩 시립대의 에드먼드 청 교수는 “친중 진영은 본토에서 넘어온 이주 가정과 노인층 중심의 풀뿌리 공동체와의 유대를 기반으로 지방의회 선거를 압도해왔다”며 “하지만 최근 홍콩 시위 사태는 민주 진영에 대한 지지를 높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도 2015년의 47%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투표가 시작된후 3시간동안 약 72만명이 투표해 투표율이 17.43%를 기록했다. 이는 4년전 동시간대 투표율(6.79%)의 3배 가까이 된다. 또 오후 1시30분까지 152만명이 투표해 215년 전체 투표자 수(147만명)를 훌쩍 넘어섰다.
24일 오전 투표를 한뒤 기자회견을 하는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EPA연합뉴스

이번 선거에서는 친중국 및 범민주 진영 가운데 승리한 쪽이 홍콩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선거인단 1200명 가운데 117명을 모두 가져가게 된다. 2015년에는 친중파 진영이 선거인단 117석을 독식했다. 당시 선거인단은 친중파 726명, 범민주파 325명으로 현격한 차이를 보여 이듬해 캐리람 행정장관이 무난히 당선됐다. 현재 홍콩 구의원은 친중파 진영이 327석, 범민주 진영이 118석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홍콩 시위 사태로 인해 범민주 진영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2003년에도 홍콩 정부가 국가보안법 제정을 밀어붙였다가 반대 시위에 밀려 철회했고, 몇 개월 후 치러진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친중파 진영은 시위대의 폭력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한다며 기대를 꺾지 않고 있다.

범민주 진영이 승리한다면 최근 경찰의 봉쇄작전에 막혀 고전하는 홍콩 시위대에 힘을 실어주면서 행정장관 직선제 등 정치개혁 요구도 다시 분출될 가능성이 크다. 친중국 진영이 승리한다면 홍콩 시위대는 더욱 기세가 꺾일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홍콩 강경 시위대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는 홍콩 이공대에서 이 대학 학생회장 대행인 켄 우(22)도 전날 오후 캠퍼스를 나와 경찰에 체포되면서 남은 시위대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이공내 내에는 아직 수십명의 시위대가 남아있지만 고립이 장기화된데다 교내에 쓰레기와 각종 화학물질이 널려 있어 위생 상태도 악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