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넷플릭스 등이 국내 업계와 망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을 빚으면서 이를 둘러싼 ‘역차별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구글은 방송통신위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망 사용료 지급 압박에 처했고, 넷플릭스는 협상 상대였던 SK브로드밴드가 방통위에 망 사용료 갈등 중재 요청을 하면서 당국에 협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다수의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는 국내 사업자와 달리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거나 훨씬 낮은 수준의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해외 CP의 트래픽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할 전망이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구글 아시아태평양 정책협력 담당자인 테드 오시어스 부사장이 지난 2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만났다. 구글 오시어스 부사장이 예방 차원에서 먼저 만남을 요청해 성사된 이날 논의는 정당한 망 사용료 지불 요청 등 구글의 책무를 강조하는 수준에 그쳤다.
향후 국내 CP와 해외 CP 간 갈등이 예고된 상황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 위원장은 구글이 국내 인터넷 서비스제공업체(ISP)와의 공정한 망 이용계약을 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방통위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구글 같은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가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망 이용 대가를 지급하지 않거나 적게 지급해 국회와 언론, 우리 국민들의 지적이 계속된다”며 “구글이 망 이용계약을 둘러싼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강조했다. 망 이용 계약은 사업자 자율영역이지만 글로벌 CP 역시 국내 콘텐츠사업자와 마찬가지로 이동통신사에 망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구글은 그동안 망 사용료 부담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날 역시 오시어스 부사장은 “한국의 이용자 보호를 위해 다양한 투자를 하고 있다”며 대답을 회피하던 기존의 모습을 반복했다. 앞서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때도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는 “망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 망 사용료만 따로 떼서 얘기하기 어렵다”고 답한 바 있다. 구글은 최근 과방위가 다음 달 개최를 목표로 추진해온 ‘구글 청문회’에 출석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망 사용료 갈등은 한 마디로 SK브로드밴드·KT·LG유플러스 등 국내 ISP와 콘텐츠를 제공하는 유튜브(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네이버 등 국내·외 CP 간 이용요금 분쟁이다. ISP가 인터넷망을 구축하고 콘텐츠업체가 그 망을 이용해 사용자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해 서로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하지만 이 망에 대한 사용료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글로벌 업체 다수가 협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국내 ISP가 속을 태우는 형국이다.
더군다나 고용량·고화질 콘텐츠가 확산하고, 사용자가 늘어나는 등 방대한 데이터 트래픽이 발생하면서 네트워크 사용료에 대한 요구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특히 페이스북을 제외한 구글·넷플릭스 등 해외 CP는 망 사용료를 거의 안 내는 반면, 국내 CP가 지불하는 망 사용료는 연간 수백억에 이르면서 역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아 왔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갈등 사례를 보면 이해가 쉽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 12일 방통위에 넷플릭스와 망 사용에 대한 갈등을 중재해달라는 재정 신청을 접수했다. 넷플릭스에 과도한 트래픽에 대한 망 사용료를 수차례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는 주장이다. 넷플릭스 가입자가 늘면서 발생한 트래픽 증설 비용을 SK브로드밴드가 내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사업자의 경우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데이터에 대한 망 사용과 국내에 들어온 데이터를 사용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망 사용이 구별된다. 넷플릭스는 캐시서버를 설치해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트래픽을 줄이겠다는 입장이지만 SK브로드밴드는 이를 설치하더라도 국내에서 사용하는 트래픽은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이에 대한 사용료는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방통위의 중재 결과는 향후 다른 해외 CP들과 국내 이통사가 맺을 계약의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의견을 청취한 후 법률·학계·전기통신분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또 의견 수렴을 거쳐 올해 안에 ‘망 이용대가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