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독 김환기만 오르는 것일까

입력 2019-11-24 16:08 수정 2019-11-24 16:50
왜 유독 김환기(1913∼1974)만 오르는 것일까.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가 한국 미술의 새장을 열었다. 뉴욕시절인 1971년 작 푸른색 전면 점화 ‘우주(Universe, 05-Ⅳ-71 #200)’가 지난 23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1억8000만원(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된 것이다. 한국미술품이 경매에서 100억원을 넘긴 건 처음이다. 수수료 포함 시 경매가격은 153억4930만원이 된다.
이로써 ‘김환기의 경쟁 상대는 김환기’라는 공식이 또 입증됐다. 직전 최고가는 2018년 5월 서울옥션의 홍콩 경매에서 낙찰된 김환기 작 ‘붉은 전면 점화(3-II-72 #220)’ 85억2996만원(6200만홍콩달러)였다.
지난 23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32억원에 낙찰되며 한국미술품 최고가를 경신한 김환기 작 푸른색 전면 점화 ‘우주(Universe, 05-Ⅳ-71 #200)’.

우주는 독립된 그림을 이어 붙인 두 폭짜리 점화(254×254㎝)로 김환기 작품 가운데 가장 크다. 이학준 크리스티코리아 대표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김환기 점화의 메인 색깔이 블루인데다 두 폭화는 유일하다. 점화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창성이 있고 소장자가 확실한 점 등 낙찰 요소 4,5박자를 고루 갖췄다”고 분석했다. 에블린 린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20세기&동시대 미술 부문 부회장은 “우주만이 앞으로 김환기 기록을 다시 깰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2007년 미술시장 호황기까지만 해도 미술시장 황제는 박수근이었다. 하지만 2016년 4월 홍콩경매에서 김환기의 1970년작 점화 ‘무제’가 48억6750만원(33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며 2007년에 박수근의 ‘빨래터’(45억2000만원)가 세운 최고가 기록을 뺏은 이래 김환기 독주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 미술품 경매가 1∼10위는 9위 이중섭의 ‘소’(47억원)을 빼면 모두 김환기가 차지하고 있다.
김환기 작 ‘붉은 전면 점화(3-II-72 #220)’. 2018년 5월 서울옥션의 홍콩 경매에서 85억2996만원에 낙찰되며 직전까지 한국 미술품 최고가를 지켰다.

점화는 김환기가 1963년 뉴욕에 정착해 74년 작고 직전까지 그린 것으로 절제되고 통일된 색조의 무수한 단색톤 점으로 가득 채운 그림이다. 미술비평가 윤진섭씨는 “이전까지 백자, 매화, 달 등 한국의 전통적인 소재를 반추상으로 그리다가 현대미술의 본산인 뉴욕에서 당시 국제적 양식인 추상표현주의와 접목한 점화를 탄생시킨 것”이라며 “점이 캔버스에 침투하는 방식은 전통 수묵의 발묵기법을 연상시키는 등 동양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1971년 뉴욕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김환기. 크리스티 코리아 제공

김환기의 추상화의 경우 박수근 이중섭 등 구상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작품 사이즈가 크다는 점도 가격을 견인하는 요인이다. 또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한국의 단색화전’을 계기로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단색화붐이 조성되고 김환기의 작품 가격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미술계는 이제 시작이라는 반응이다. 지난 5월 작품 ‘토끼’가 1085억원에 낙찰되며 생존 작가 최고가를 경신한 미국 팝아티스트 제프 쿤스는 차치하고라도 비슷한 시대를 산 중국 작가에 비해서도 크게 열세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마티스'라는 별명이 붙은 중국 작가 산위의 '5인의 누드'. 수수료 포함 3억398만5000홍콩달러(약 455억5518만원)에 낙찰됐다.

김환기의 우주가 낙찰된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선 중국 근현대 4인방 중 한명인 산유(常玉, 1901∼1966)) 작품 ‘5인의 누드’가 수수료 포함 3억398만5000홍콩달러(약 455억5518만원)에 낙찰되며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는 프랑스 유학파로 김환기에 비견되는 중국 작가다.

서진수 강남대교수는 “작품 가격이 계속 오르기 위해서는 미술사적인 평가가 뒷받침돼야 한다. 전시와 학술대회 등으로 새로운 담론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어 “한국 근대 작가들의 작품을 상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근대미술관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