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항쟁 지지한다! 광복홍콩 시대혁명!”
23일 오후 3시쯤 서울 시청역 근처에는 수십 개의 카메라가 검은 옷과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찍고 있었다. 100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홍콩 항쟁 지지한다”는 피켓을 들었다.
우리나라 대학생과 청년 단체들은 이날 시내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노동자연대 고려대 모임 회장이자 이번 집회를 주최한 한수진씨는 집회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홍콩시위대엔 힘을, 억압적인 중국 정부엔 압력을, 무책임한 한국 정부엔 비판을 하기 위해 모였다”며 “뿌리 깊은 불평등, 착취로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모든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곧 시청 앞 금세기빌딩에 모여 을지로입구역과 명동역을 거쳐 중국대사관 앞까지 행진했다. 도로 한 차선을 따라 “광복홍콩! 시대혁명” “국가 폭력 규탄한다! 인권 침해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수십 명의 경찰이 뒤를 따랐다. 명동을 지날 땐 시위대 앞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우르르 내리기도 했다. 도로 위 차 안에서 창문을 내리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고, 홍콩 시민들의 5대 요구를 지지한다며 손바닥을 펼치는 사람도 보였다. 두 시간의 행진을 마친 이들은 중국 대사관에 폭력 진압을 중단하라는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홍콩을 보며 5·18민주화운동이 떠올랐어요”
집회 참가자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다. 대학생들은 학교 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고 금세기 빌딩에 삼삼오오 모였다. 이들은 과거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한국인으로서 홍콩 사태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참가 이유를 설명했다. 고려대생 김모(22)씨는 “홍콩 현지와 연락해보니, 홍콩은 전시상태였다. 홍콩 이공대 학생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유서를 품고 나온다”며 “홍콩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의 5·18민주화운동 때를 보는 것 같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지지는 한국이든, 어느 나라든 똑같이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재하(20)씨는 “국제적으로 홍콩 시위를 지지하다 보면 언젠가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참여 이유를 밝혔다.
동국대 사학과에 재학 중인 정모(26)씨는 최근 대학가에서 벌어진 한국 학생과 중국 유학생 간의 갈등에 대해 “최근 중국 유학생들이 대자보나 커뮤니티를 통해 의견을 표출하기 시작했다”며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의견도 충분히 들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갈등이 심화되자 학교 측이 대자보를 철거한 경우도 있었다.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은 “한국 학생이든, 중국 유학생이든 대자보를 더 이상 붙일 수 없다”며 “이제는 서로 다른 목소리도 들을 수 없게 돼서 안타깝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불만을 표하는 학생도 있었다. 서울대생 장모(23)씨는 “중국과의 복잡한 관계로 인해 한국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낼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며 “하지만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센터나 외교부가 지지 입장을 표명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Fight for Freedom!”
외국인들도 집회에 참여했다. 한 홍콩인(23)은 가방에 시진핑을 상징하는 ‘곰돌이 푸’ 인형을 달고 마스크를 쓴 채 “Fight for freedom(자유를 위해 싸우자)”을 외쳤다. 그는 “한국인들이 홍콩을 위해 집회에 나서는 모습에 감명받았다”며 “현재 홍콩은 아비규환이다. 거리가 불타고 주요 교통수단인 MTR(지하철)도 마비됐다. 대학생들은 피를 흘리며 시위에 나선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도 한국처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위챗(중국 메신저 앱)에는 시진핑과 닮았다는 이유로 ‘곰돌이 푸’라는 글씨가 작성되지 않는다.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다 통제하는 게 중국 정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도로 한 차선을 빌려 집회 동선을 마련해 주고, 20∼30명의 경찰관이 집회 내내 시민들을 뒤따르는 한국의 모습이 부러울 따름”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것도 결국 이런 자유”라고 밝혔다.
집회에 참가한 한 독일 유학생은 ‘홍콩 시위 지지는 내정 간섭’이라는 주장과 관련, “(홍콩 사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닌 인권 탄압의 문제다. 우리는 홍콩 시민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거리에 나온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 문화를 부전공하는 그는 홍콩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오가는 폭력 행위에 대해선 “유감스럽다”면서도 “공권력을 이용한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이다. (경찰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고 본다”고 답했다.
경희대에 유학 중인 한 중국인 학생(21)은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면서 “현재 중국에서는 언론 통제 등으로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폭력이 난무한 시위 현장에 대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답했다.
“이런다고 중국 태도가 바뀔까요?”
금세기 빌딩에서 중국 대사관까지의 이동한 과정에서는 집회 행렬을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집회 마지막 순서인 중국 대사관 앞에서 연설을 지켜보던 한 중국 유학생은 “유치하며 철없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유학 생활 4년째인 이 학생은 “타지까지 와서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정진하지 않고 정치적인 일에만 치중하는 모습이 한심하다. 길거리에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 학생들에 대해선 “오지랖이다. 자국의 문제를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한가롭게 왜 남의 나라 문제까지 신경 쓰는가”라고 답했다.
한 중국인 관광객은 대표적 관광지인 명동에서 이 같은 시위가 벌어진 것을 우려했다. 그는 “(시위로 인해) 한국 사람들을 바라보는 중국 관광객들의 인식은 크게 나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 시위의 본질을 인권이 아닌 한 나라의 정치 갈등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체제를 바꾸기는 불가능하다”며 “우리가 어떠한 목소리를 내도 바뀌는 것은 없기에 정치에 대해선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데로 따라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김지은·김영철·소설희·이홍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