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국정 대전환을 촉구하며 닷새째 단식 농성을 이어갔다. 황 대표는 단식 나흘 만에 자리에 누웠다. 황 대표 앞에는 ‘총체적 국정 실패, 이게 나라입니까?’라는 빨간색 피켓이 세워져 있다.
피켓엔 “지소미아 연장 촉구, 공수처법,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이 세 가지를 요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지난 22일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를 발표하자 ‘지소미아 연장 촉구’는 삭제돼 눈길을 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문제가 잘 정리됐다”며 황 대표에게 “단식을 풀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비서관은 이날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황 대표를 찾아 문 대통령이 “수출규제 문제와 지소미아 문제는 국익의 문제였는데, 황 대표께서 많이 고심해 주셨고, 이렇게 단식까지 하시며 추운데 (걱정)해줘서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한편으로는 감사하다”고 했다며 문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이에 황 대표는 “말씀 감사하다. 지소미아가 폐지되는 일이 안 일어나길 바란다”고 답했다. 한국당 김명연 수석대변인은 이날 “대한민국 안보와 국민 안전을 파국으로 몰아넣을 뻔했던 지소미아 파기가 철회돼 다행”이라며 “이제 공수처법,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저지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단식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희경 대변인도 농성장에서 “이제 황 대표와 한국당은 산 하나 넘어섰다”고 외쳤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미국 일정을 앞당겨 귀국해 황 대표의 농성장을 찾았을 때 황 대표는 “단식의 시작은 선거법 개정안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황 대표가 단식하면서 조건으로 내건 지소미아 연장은 관철됐지만 나머지 연동형 비례 대표제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철회를 위한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을 발표한 다음날인 23일에도 황 대표는 단식 농성을 이어가며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 오전 10시15분쯤 최근 황 대표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은 오세훈 전 시장을 만났다. 농성장을 찾은 오 시장은 “주무시지도 못하고 식사도 못하고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실 것 같은데 어떡하느냐”며 “날이라도 좀 따뜻해야 하는데…곧 또 추워진다고 하는데 드릴 말씀이 없다”고 걱정했다.
오 전 시장은 이어 “내가 했던 말이나 보도된 것은 너무 괘념치 말라”며 “다 잘 되자고 하는 말씀”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오 전 시장은 황 대표의 단식돌입 전날인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불출마를 선언한 김세연 의원이 차려준 밥상도 걷어차고 타이밍도 놓치고 기회를 위기로 만드는 정당”이라며 황 대표의 리더십을 비판했었다.
이에 대해 황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나를 위해 여기까지 나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는 또 서울 광진을 ‘을’ 놓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경쟁을 하는 오 전 시장에게 “힘든 곳에서 고생하신다”고 격려했다.
오 전 시장은 이에 “요즘 좀 변수가 생겨서…‘추미애 법무부 장관설'이 있어서 좀 어수선하기도 하다”며 “아무튼 큰 결심하셨다. 건강 조심하시라”고 전한 뒤 자리를 떠났다. 오후 들어 기온이 오르자 황 대표는 패딩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지자들에게 다가갔다. 황 대표는 허리를 숙여 지지자들과 일일이 인사하며 악수했다.
오후 5시쯤 나경원 원내대표가 이날 새벽에 이어 두번째 농성장을 찾아 황 대표의 건강을 염려했다. 나 원내대표는 “아침보다 훨씬 안 좋으신 것 같다”고 걱정하자 황 대표는 “괜찮다”면서도 “5일째 들어가면 힘들어질 것 같다”고 답했다. 황 대표는 그러면서도 “지금 의원들의 관심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나 원내대표는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 예산안 처리 등을 언급하며 “내일 오전 이곳에서 의원총회를 열 예정”이라고 전했다.
황 대표는 “지소미아는 (종료 연기를 이끌어냈다고) 자랑하면 안 되고 팩트를 정확하게 전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문제로 굉장히 신뢰를 잃어버린 것 같다”며 “그런 것이 결국 방위비 협상에 있어서도 안 좋은 기제로 작용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황 대표는 나 원내대표가 떠난 뒤에도 묵묵히 농성장을 지켰다. 해가 지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털모자와 목도리를 추가로 착용했다. 당초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도 황 대표를 찾을 예정이었지만 취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6시쯤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듯한 황 대표는 농성장 자리에 누웠다. 단식농성 내내 비교적 반듯한 자세를 유지했던 황 대표가 자리에 누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