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딸 시체도 못 찾았습니다. 경찰만 믿었는데….”
30년 긴 시간을 보낸 아빠는 백발이 됐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여덟살 딸이 흔적 없이 사라진 뒤부터는 세월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다.
자신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라는 이춘재의 자백이 등장했다. 아빠는 그토록 어린 딸아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희생당했는지 그제야 알았다.
2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에서는 화성 사건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합동 위령재가 열렸다. 이춘재가 추가 자백한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 피해자 김모(당시 8세)양의 아버지 김모씨는 이곳에 참석해 눈물을 쏟았다.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이 자리에서 “안전을 지키는 것이 경찰의 존재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많은 희생이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은 사과와 함께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사건의 진실을 정확히 알려드리는 것이 경찰의 책무인 만큼, 수사본부에서 모든 사건을 원점에서 검토하고 철저히 수사해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수사 과정에 과오가 있었다면 그 역시 사실대로 숨김없이 밝힐 것”이라며 “다시는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배 청장의 추도사가 끝나자 김씨는 배 청장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당시 수사 관계자를 처벌해달라며 오열했다. 그는 “30년 동안 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경찰들이 은폐해 시신까지 다 없애버렸다”며 “그 경찰은 누가 잡아야 하나. 왜 잡지 못 하고 처벌하지 못하느냐”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나는 (딸의) 시신조차 못 찾았다. 사람 찾아달라고 30년을 외쳤는데 (그 경찰이 시신을) 어디 감춰 숨겨버렸다”며 “경찰만 믿었는데, 경찰이 (딸을) 두 번 죽인 것이다. 가족들은 속에 병이 났다”고 소리쳤다.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은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김양이 낮 12시30분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된 일이다. 같은 해 12월 김양이 실종 당일 입었던 치마와 메고 있던 책가방이 인근에서 발견됐다.
초등학생 여아가 하굣길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1년이 지나서였다. 김양의 물건이 발견된 태안읍 병정5리에서 불과 30여m 떨어진 지점에서 화성 9차 사건이 일어난 뒤였다. 인근에서 한 여중생이 누군가로부터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자 덩달아 주목받게 된 것이었다.
딸이 사라진 뒤 아버지는 김씨는 두 차례에 걸쳐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이춘재를 용의선상에 올리지 않았다. 끝내 김양 가족의 요구를 묵살하고 사건을 ‘단순 실종’으로 종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화성사건 수사본부 관계자는 “당시 경찰은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과 화성 사건이 연관이 있다고 보고 주변 탐문을 한 것으로 기록상 확인된다”며 “다만 이춘재는 당시 강도예비죄로 수감 중이어서 대면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