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테너를 빌려줘’… 유쾌한데, 영리하기까지 한 오페라 이색극[리뷰]

입력 2019-11-22 16:20 수정 2019-11-22 16:38
연극 '테너를 빌려줘' 포스터. 바라이엔티 제공


이야기에 앞서 통속극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자. 가족과 지인, 연인과의 사랑 등 일상의 일들을 풀어놓는 통속극은 흔히 단순한 것으로 평가되곤 했다. 그렇다면 통속극의 장점은 무엇인가. 재미가 있다. 이해하기가 쉽다. 무엇보다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 속엔 인류가 오랜 시간 꿈꿔왔던 가치들이 꼭꼭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사랑과 우정, 믿음과 우애 등이 그런 것들이다.

여기 아주 영리하면서 유쾌하기까지 한 통속극이 있으니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테너를 빌려줘’(원제 렌드미어 테너)다. 소극장에서 연극을 즐기며 유명 오페라 넘버까지 들을 수 있는 독특한 코미디다. 뮤지컬 분야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1986년 영국 초연 당시 제작했던 음악을 활용하는데, 전 세계 25개국에서 사랑받은 메가 히트작이다.

내용이 형식 못지않게 이색적이다. 극 제목이 암시하듯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 테너 티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그린다. 티토의 미국 공연 당일 오페라 단장과 그의 조수 맥스는 무대에 올라야 할 티토가 술과 약에 취해 잠든 것을 보고 죽은 것으로 오해한다. 막대한 돈이 걸려있는 공연을 포기할 수 없었던 단장은 맥스를 티토의 배역이었던 오셀로로 분장시켜 무대에 오르게 한다. 문제는 여기부터인데, 오페라는 대성공이었지만 티토가 뒤늦게 잠에서 깨어나고 만다. 똑같은 외형을 한 맥스와 티토로 인해 극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성병숙 박준규 노현희 현순철 김재만 정수한 문슬아 등 베테랑 배우들은 이 황당한 소동극에 짙은 설득력을 부여한다. 특히 성악가와 성우, 뮤지컬 무대 출신의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가 인상적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인 ‘네순 도르마(공주는 잠 못 이루고)’ 같은 유명 오페라 넘버들이 극장을 가득 채우는데, 기존 연극과는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것은 물론 남다른 압도감으로 시선을 단단히 붙든다.

이 극을 영리하다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독특한 극작 방법에 있다. 티토의 분장을 한 맥스로 인해서 벌어지는 오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극 무대가 티토의 숙소, 즉 잠을 자는 방과 메인 홀 2개의 섹션으로 분할돼 있는데, 방과 방을 옮겨가며 일어나는 소동은 시종일관 눈을 즐겁게 하는 이채로움이 있다. 장면 전환도 대단히 빠르다. 반전의 묘미는 이런 극의 속도감과 맞물리면서 더 극대화된다.

특히 마지막엔 영화의 쿠키 영상처럼 100분간 간단없이 이어져 왔던 소동극을 배우들이 빠르게 뛰어다니며 다시 한번 리와인드 해주는데, 그때쯤이면 관객들은 배우들과 오랜 시간 재밌는 여정을 함께 해왔다는 걸 느끼게 된다.

‘웃음’이란 일상의 위로가 필요할 때 제격인 극이다. 누군가는 농 짙은 대사들이 때로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연극깨나 봤다고 자부할 관객들이라면 결말 또한 쉬이 예상할 수 있겠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극이 처음부터 향하는 건 결말의 새로움이기보단 관객과 호흡하고, 함께하는 과정에서의 ‘웃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극이 끝나고 가만히 곱씹다 보면 물씬 느껴져 오는 사랑의 본질이나 우정 등 삶을 관통하는 가치들은 극이 쥐여주는 아주 큰 덤이다. 공연은 다음 달 29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