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냐 ‘막역한 사이’냐.
22일 오후 1심 선고가 예정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수수·성접대 의혹 사건 실마리를 풀 핵심 쟁점이다. 김 전 차관 측은 사건 구도를 진경준 전 검사장의 ‘넥슨 공짜주식’ 재판처럼 끌고 가길 원한다. 법원이 진 전 검사장의 넥슨 공짜 주식수수 혐의에 대해 검사·스폰서 관계를 ‘막역한 친구 사이’로 전제한 뒤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아 무죄”라고 판단한 선례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 측은 자신도 스폰서였던 건설업자 윤중천씨나 사업가 최모씨와 오랜 친분이 있거나 절친한 사이였을 뿐 대가 관계가 없었으니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검사와 스폰서 관계라면 사건에 도움을 얻을 목적으로 판단돼 뇌물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오랜 친구 사이라면 특별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준 것으로 볼 여지가 생긴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진 전 검사장은 2005년 친구인 김정주 넥슨 대표에게서 4억여원을 받고 넥슨 비상장 주식을 구매한 뒤 120억원대 차익을 얻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으로 기소됐다. 이들은 고등학생 때인 1985년 처음 만나 20년간 친구로 지내왔다. 1심 재판부는 “진경준과 김정주는 친한 사이를 넘어 서로 ‘지음(知音·막역한 사이를 의미하는 중국 고사성어)’ 관계에 있다”며 뇌물에 대한 대가성이 없다고 판단, 주식매수대금 수수를 무죄로 선고했다.
항소심은 2017년 7월 주식매수대금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그해 12월 이를 무죄 취지로 뒤집고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진 전 검사장이 받은 돈과 김 대표가 그로 인해 얻을 대가 간의 관계가 “추상적이고 막연하다”며 무죄로 판시했다. 뇌물을 주고 도움을 받을 구체적인 현안이 없었고, 장래에 그런 사건이 생길 개연성도 낮다는 이유였다.
김 전 차관 측은 진 전 검사장 사례와 닮은 사건이란 점을 재판부에 적극 소명해왔다. 김 전 차관 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정계선) 심리로 지난달 29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뇌물공여자 윤씨와 최씨는 오래 친분이 있거나 친구 사이라서 김 전 차관에게 준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이 “사건 발생 기간에는 최씨와 상당히 절친한 친구 사이였느냐”고 묻자 김 전 차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김 전 차관 측은 이날 “검찰 고위직에 있으면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뇌물 무죄 판단을 받은 진경준 사건을 적극 참고해 같은 판단을 내려달라”고 밝혔다.
김 전 차관과 최씨는 1993년쯤 고등학교 동문모임에서 처음 만나 친분을 쌓아온 사이다. 그러나 김 전 차관은 2012년과 올해 검찰 조사에서는 최씨와 친분이 없는 것처럼 얘기했다.
그러다 지난 5월 16일 영장실질심사에서 ‘최씨를 고위정책과정에서 알게 됐다’는 진술을 뒤집고 “옛날부터 친구처럼 지낸 사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김 전 차관은 결심공판에서 “축소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별로 친하지 않은 것처럼 얘기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에서 재판 단계로 접어들면서 진 전 검사장 사건을 염두에 두고 대응 전략이 대폭 수정된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김 전 차관 측은 검찰이 뇌물 수수기간으로 특정한 2000년 10월~2011년 5월에는 최씨가 뇌물을 주는 대가로 이익을 얻을 현안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진 전 검사장 사건에서 ‘뇌물에 대한 대가성이 추상적이고 막연하면 무죄’라는 법리를 염두에 둔 것이다. 김 전 차관 측은 최씨가 형사사건에 연루된 시기는 각각 1998년 7월과 2014년 12월이라며 뇌물공여 기간과는 동떨어졌다고 논박했다. “현안 없는 뇌물죄의 성립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 사건의 관건은 결국 김 전 차관과 스폰서들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지, 뇌물의 대가를 기대할 수 있는 현안이 있었는지 여부가 될 전망이다.
검찰은 김 전 차관과 같은 고위 공직자의 경우 대가관계가 폭넓게 인정된다고 본다. 앞서 법원은 고교동창에게서 뇌물을 받은 김형준 전 부장검사 사건에서 “고위 공직자의 경우 법률상·사실상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 근무지에 관계없이 장래의 형사사건 등이 알선의 대상”이라며 청탁의 배경을 폭넓게 인정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