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구금됐던 英영사관 직원 “때리고, 잠 안 재우고, 허위 자백도”

입력 2019-11-21 17:40 수정 2019-11-21 17:56
중국 공안에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고 BBC에 폭로한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직원 사이먼 정. 연합뉴스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직원이 2주간 중국 당국에 감금돼 고문과 폭행, 가혹 행위 등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영국 BBC는 20일(현지시간)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에서 무역 및 투자 담당 직원으로 근무하던 사이먼 정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가 겪은 일에 대해 보도했다.

사이먼 정은 지난 8월 8일 홍콩과 인접한 중국 선전 지역에 출장을 갔다가 자신이 거주하던 홍콩으로 돌아오던 중 공안에 체포됐다. BBC에 따르면 홍콩과 중국 본토를 잇는 고속철 역인 웨스트 카오룽 역의 출·입경 관리소에서는 중국법이 적용되며, 중국 공안 등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사이먼 정은 이곳에서 홍콩으로 넘어가던 중 공안 여러 명이 자신에게 다가와 휴대전화와 가방, 안경 등을 빼앗았다고 전했다.

그들은 “위에서 명령을 받았다”며 사이먼 정을 인근에 감금했고, ‘호랑이 의자’라는 철제고문 장치에 그를 고정한 뒤 최장 48시간 동안 심문하기도 했다.

한 공안은 “우리는 너를 영국 스파이로 의심하고 있다”며 절대 풀려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고, 또 다른 공안은 사이먼 정을 직업교육센터로 보낼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유엔은 이 시설에 최소한 100만명의 위구르족과 다른 이슬람교도가 구금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이먼 정은 수갑과 족쇄를 차고 특정 자세를 강요받는가 하면 수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있기도 했으며 움직일 때마다 경찰봉으로 맞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잠을 자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중국 국가를 부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사이먼 정에 따르면, 중국 공안은 그에게 영국이 홍콩에서의 시위를 부추기고 자금을 지원했다는 점을 실토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사이먼 정은 자신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 시위에 나간 적이 있으며, 영사관 직원으로서 영국 국민이 영향을 받고 있는지 등을 모니터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를 심문하던 사람이 매우 화를 내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소리쳤다고 사이먼 정은 전했다.

사이먼 정은 마치 짜인 극본에 따라 심문이 이뤄졌고, 변호사는 물론 가족과의 접견조차 허락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공안은 그에게 영국 영사관 내부의 배치, 직원 출입증, 영사관 내에서 일하는 국내정보국(MI5)과 해외정보국(MI6) 요원들에 대한 정보를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사이먼 정은 2주 정도 지난 8월 24일 성매매 혐의 유죄를 인정한 뒤에야 풀려났다. BBC는 중국 당국이 특정 인물에 대한 굴욕감 등을 주고 주변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같은 허위 성매매 혐의를 자주 씌운다고 보도했다. 중국에서는 성매매 혐의자를 최대 15일간 구금할 수 있다.

중국 당국은 사이먼 정에게 중국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할 것을 제안하면서, 만약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외부에 알리면 다시 중국으로 납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사이먼 정은 홍콩 시민의 권리를 훼손하는 중국 당국을 고발하고 홍콩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자신이 겪었던 일을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21일 주홍콩 영국 총영사관 앞에서 중국 정부가 사이먼 정을 구금한 것에 대한 항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이먼 정의 폭로 이후 영국 정부는 중국 대사를 불러 항의했고 영국과 중국 간 외교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사이먼 정은 우리 팀의 귀중한 임원이다. 중국에 감금된 상황에서 그가 겪었던 고문과 같은 학대에 대해 매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라브 장관은 중국 대사에게 중국이 국제적 의무를 위반하고 사이먼 정에게 잔혹한 고문을 한 것에 대한 분노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중국 대사는 오히려 내정 간섭이라며 영국 정부에서 자국 내 사안에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중국 대사는 “자국에 해를 끼치지 않고 싶으면 중국 문제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이먼 정은 더 이상 중국으로 출장을 갈 수 없다며 영사관 근무를 그만뒀으며 현재 신변 안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김영철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