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번엔 ‘안보 무임승차(free ride)’를 주장하며 한국 정부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을 가했다. 미국 측이 공식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설을 부인했음에도 증액 위협은 한층 높아지는 양상이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는 20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서 “한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동맹 파트너 중 하나”라면서도 “누군가 무임승차가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미동맹 관계를 감안하더라도 한국 정부에 대한 방위비 증액 요구는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비건 지명자는 “우리는 한국과 터프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을 비롯한 다른 동맹들과의 방위비 협상에 대해선 “그들의 책임을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터프한 협상들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에 대해 “불공정하다”면서 수차례 노골적인 증액 요구를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미국은 현재까지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21일 한국이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1개 여단을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국내 언론 보도를 부인했다. 에스퍼 장관은 베트남 방문을 마치고 떠나는 길에 이와 관련한 기자들 질문을 받고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과장되거나 부정확하고, 거짓된 기사를 매일 본다”고 덧붙였다.
에스퍼 장관은 ‘협상 실패 시 미군 철수 위협이 있을 것이냐’는 반복된 질문에 “이것으로 동맹을 위협하지 않는다. 이것은 협상”이라고 강조했다. 비건 지명자도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켜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앞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지난 19일 필리핀 방문 중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 감축 문제에 관해 “나는 우리가 할지도, 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에 대해 예측이나 추측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에 비해선 상당히 달라진 스탠스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미 군사동맹을 뿌리째 흔드는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기는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주한미군 감축의 연계 여부에 대한 질문에 “(그런 식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군 소식통은 “미국은 반미 여론을 들끓게 할 수 있는 미군 철수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면서, ‘철수 검토설’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압박 효과를 거둔 셈”이라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