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가 이른바 ‘찍힌 법관’들에게 부당한 인사 불이익을 가한 구체적인 정황이 당시 인사심의관 출신 법관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법관은 ‘법관 블랙리스트’로 불린 인사 불이익 문건에 대해 “대법원장의 결재를 받는 게 원칙”이라고 답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20일 노재호 서울남부지법 판사를 증인으로 불러 2015~2016년 특정 법관에게 이뤄진 인사 불이익 조치의 경위와 결정권자가 누구였는지 등에 대해 신문했다.
노 판사는 2015년 2월~2017년 2월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인사 1·2심의관으로 있으면서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물의야기법관 인사조치 검토’ 등의 문건을 작성했었다.
검찰은 이날 2015~2016년 법관인사배치 엑셀자료 등을 근거로 근무평정이 우수했던 법관들이 물의야기법관으로 분류돼 희망지역과 무관하게 격오지로 전출된 배경에 대해 캐물었다.
노 판사는 법정에서 “직접 한 일이 아니라 구체적인 과정은 알지 못한다”면서도 “판사의 배치는 대법원장의 정책결정 사안이므로, 기존의 인사원칙이나 관례와 달리할 때 그 점을 보고해 결심을 받아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예외적인 인사 불이익 결정을 내릴 때 최종 결정권자가 대법원장이라는 의미다.
검찰이 든 대표적 인사 불이익 사례는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다. 송 부장판사는 수원지법에서 근무하다가 2015년 2월 정기인사 때 격오지로 분류되는 창원지법 통영지원으로 발령됐다.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부적절한 글을 썼다는 이유였다. 그는 당시 2003년 대법관 임명제청 관련 사법파동을 사법사의 물줄기를 바꾼 긍정적 사건으로 평가한다는 글을 썼었다.
당시 송 부장판사의 인사 형평점수는 가장 높은 A등급(백분위는 95.4%)이었는데도 물의야기법관을 의미하는 ‘G그룹’으로 분류돼 인사 희망에 적지도 않은 지역으로 전보됐다.
송 부장판사에 대한 인사 불이익 방안이 담긴 ‘물의야기법관 인사조치 검토’(2015년 1월 22일 작성) 문건 겉면의 최종결재란에는 양 전 대법원장의 성을 뜻하는 한자 ‘양(梁)’이 적혀 있었다. 문건 내부에는 ‘제1안 형평순위 강등하여 지방권 법원 전보’ ‘제2안 초임부장 배치원칙에 따라 지방권 법원 전보’라는 항목이 나와 있었는데, 송 부장판사에 대해선 1안에 ‘V’ 표시가 돼 있었다.
검찰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당시 인사총괄심의관실이 송 부장판사에 대한 불이익 조치에 반대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노 판사는 “인사실에서 (송 부장판사의) 통영 배치에 반대했던 것은 알고 있었다”며 “결재 라인이 어느 단계에서 결정됐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반대한 이유를 묻자 노 판사는 “송 부장판사가 물의야기로 검토된 사유가 판사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통영에 배치될 정도인지에 대해 실무자들이 다른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A등급을 받고도 물의야기법관으로 강등됐던 유모 전 부장판사와 마모 부장판사의 인사 배치 과정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다. 이들은 송 부장판사와 다르게 ‘물의야기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에 언급되지 않았다. 검찰이 “인사심의관이 임의로 강등했느냐”고 질문하자 노 판사는 “인사심의관 임의로는 당연히 할 수 없다. 다만 배치과정은 제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검찰 조사에서 ‘물의야기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에 결재한 사실은 있지만 세부 내용은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