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최장수 총리 등극한 날 검찰에 고발당해

입력 2019-11-20 17:16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일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기자들에게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된 것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일 역대 최장수 총리로 등극하는 동시에 시민단체로부터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최근 세금이 투입되는 정부 주최 행사인 ‘벚꽃 모임’의 사유화 논란이 정치공방 차원을 넘어 검찰 수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날 재임일수 2887일을 기록해 가쓰라 다로(1848∼1913) 전 총리의 최장수 총리 기록을 넘어섰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남은 임기 동안 초심을 잊지 않고 정책 과제에 임하겠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도전에 나서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여전히 개헌에 대한 야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임기 동안의 과제로 디플레이션 탈출, 저출산 및 고령화 해결, 전후외교 총결산, 헌법 개정을 꼽았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날 국회에 참석해 최근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벚꽃 모임’에 대해 집중 추궁을 당하는 신세가 됐다. 그기 매년 봄 정부 주최 ‘벚꽃 모임’을 개인 후원회 친목행사로 만들었다는 사유화 논란과 관련 연일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벚꽃 모임’은 원래 초청 대상자가 약 1만명 정도이지만 아베 총리의 2차 집권 이후 참석자가 늘어 올해는 1만5400명이 초청됐다. 그동안 아베 총리는 초청 대상자 선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의 아베 총리 사무소에서 후원회원들에게 보낸 ‘벚꽃 모임’ 행사 안내문이 공개되면서 거짓말이 드러났다. 심지어 아베 총리 부인인 아키에 여사도 개인적으로 초청 대상자 선정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졌으며, 야마구치현의 자민당 계열 지자체 의원들이 아베 총리 사무소 명의의 신청서를 이용해 지지자들을 벚꽃모임에 참여토록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아베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내 사무소가 벚꽃 모임을 주최하는 내각 관방으로부터 추천 의뢰를 받아 참가 희망자를 모집했다. 사무소에서 내 의견을 물으면 답했다”면서 초청에 관여한 사실을 인정했다. 또 벚꽃 모임 전날 도쿄 고급호텔에서 열린 만찬은 자신의 후원회가 주최한 것도 인정했다. 호텔 만찬 참가비는 5000엔으로 되어 있지만 최소 비용이 1만1000엔이어서 아베 총리 측이 향응을 제공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초청자의 최종 결정은 내각 관방이 했으며, (논란이 되고 있는) 만찬 비용은 참석자 각자가 냈다”며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아베 총리에 이어 국회에 참석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야당의 요구에 올해 초청 인사 1만5000여명의 내역을 밝혔다. 그동안 초청 인사 명단을 파기해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정부 부처에 보존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스가 장관에 따르면 초청자는 각 부처 추천 6000명, 자민당 추천 6000명, 아베 총리 추천 1000명, 부총리 및 관방장관 추천 1000명, 문화예술계 특별 초청자·언론 관계자·공명당 관계자 1000명이었다. 스가 장관은 “아베 총리의 추천은 1000여명에 불과하다. 아키에 여사의 부인 추천까지 포함된 숫자이며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오래된 관행이지만 인원 수가 늘어난 것을 반성하면서 향후 초청 기준과 과정을 명확하게 하는 등 전면 재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도통신은 전날 집권 자민당이 올해 4월 열린 벚꽃 모임을 7월 예정돼 있던 참의원 선거에 활용한 의혹이 있다고도 보도했다. 세금이 들어가는 공적 행사가 특정 정당의 사전 선거 운동으로 이용됐다는 의미여서 아베 총리 개인은 물론 자민당 차원의 선거법 위반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한편 이날 아베 총리가 최장수 재임 기록을 세운 것과 관련해 자민당에서는 축하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아베 1강(强)’이라는 당내 분위기를 반영하듯 찬사 일색이다. 하지만 야권은 물론 언론은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은 “아베 내각은 유산도 성과도 없는 장기 정권”이라며 “국회의 행정 감시 기능을 망가트렸고, 국민 생활의 어려움만 키웠다”고 비판했다. 고이케 아키라 공산당 서기장도 “총리가 선두에 서서 도덕적 해이를 행하고 있다”면서 “아베 내각은 사상 최악의 내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도쿄신문은 ‘조심성을 잊은 정치를 걱정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아베 내각이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은 ‘겸허와 정중’이지만, 실제 정치는 이런 단어와 거리가 멀다”면서 “선거에서 이기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식의 독선적인 방식이 정치로부터 조심성과 염치를 빼앗았다”고 비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