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 최고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생가가 오랜 법적 분쟁 끝에 경찰서로 개축될 예정이다. 네오나치 등 각종 극우세력이 이곳을 성역화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는 방안도 한때 검토했지만 정치권과 역사학계의 반대를 받아들여 경찰서로 활용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독일·오스트리아 국경도시인 브라우나우에 위치한 히틀러 생가를 경찰서로 개조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AFP통신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볼프강 페쇼른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경찰이 이 주택을 사용토록 함으로써 이곳을 나치즘 기념관으로 신성시할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히틀러는 1889년 4월 20일 브라우나우의 3층짜리 건물에서 태어났다. 히틀러는 1925년 구술한 ‘나의 투쟁’에서 자신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통일하라는 운명의 점지를 받아 브라우나우에서 태어났다며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히틀러는 출생 후 이 건물에서 고작 3년 동안만 거주했지만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도 나치 동조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반(反)파시즘 진영은 매년 히틀러 생일 때마다 건물 인근에서 집회를 벌였다.
이 건물은 원래 게를란데 포머가 소유권을 갖고 있었다. 그의 가문은 1세기 가까이 이 건물을 보유해왔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1970년대 이 건물을 포머에게서 임차해 복지시설 등으로 활용했다. 정부는 2011년 대규모 개·보수 공사를 추진했으나 포머가 이를 반대하고 매각도 거부함에 따라 임차 관계를 종료했다. 이후 건물은 지금까지 방치돼 왔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2016년 건물을 강제 몰수하는 법률까지 제정해 소유권을 확보하고 포머에게 보상금을 제시했다. 포머가 보상금 액수가 적다며 반발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시 3년 동안 법적 싸움이 이어졌다. 대법원이 보상금 액수를 81만 유로(약 10억5000만원)로 최종 확정함에 따라 정부는 건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됐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당초 이 건물을 철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치권과 역사학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굽혔다. 히틀러 생가가 그 어떤 정치적, 역사적 의미로도 기념되지 못하도록 관공서나 상점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의견이 공감대를 얻으면서 경찰서로 최종 확정됐다. 정부는 재건축 작업을 위해 이달 중 유럽연합(EU) 내 건축가들에게서 설계 공모를 받을 예정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