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정말 죽이고 싶다”…가난의 경로를 탐색한 신간 ‘아빠의 아빠가 됐다’

입력 2019-11-20 16:28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tvN)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했었다. “아무도 모르게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더니….” 얼마간 위악의 감정이 뒤섞인 말이었지만 적지 않은 시청자는 이 대사에 공감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족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삶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지고 가족이 징글징글하게 여겨지는 일을 한 번쯤은 겪게 된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에 여일하게 흐르는 정서도 비슷한 감정이다. 책에서 화사하게 느껴지는 건 핑크빛 표지가 전부다.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간단없이 이어진다. 20대 청년이 적어 내려간 한숨의 기록이면서, 구멍이 숭숭 뚫린 한국의 사회 안전망을 재고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책에는 ‘가난의 경로를 탐색하는 청년 보호자 9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조기현씨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작성해야 했던 각종 진단서나 정산서를 촬영한 사진이다. 그는 "온갖 서류들이 가난의 경로를 따라다닌다"고 말한다. 이매진 제공


2인분의 삶

책을 펴낸 조기현(27)씨를 소개한 책날개부터 살펴보자. “공돌이와 노가다를 거쳐, 메이커와 작가로 일하면서, 치매에 걸린 50대 아빠의 아빠로 살아가는, 1992년생 청년 보호자.”

여기까지만 읽어도 저자의 굴곡진 삶을 짐작할 수 있다. 기현씨의 부모님은 그가 초등학생일 때 갈라섰다. 아빠는 기현씨를 떠맡았고 여동생은 엄마가 데려갔다. “가난한 집안이 으레 그렇듯 나눠줄 자원이 없으니 부모가 자식의 삶에 개입하는 법”이 없었다. 기현씨는 이런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하지만 세는나이로 그가 스무 살이던 2011년 아빠가 쓰러지면서 그의 삶을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건설 현장 노동자였던 아빠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입원 약정서에 ‘연대 보증인’을 적어야 했는데 만 24세 이상만 가능해서 누군가의 ‘이름’이 필요했다. 친척들과는 소원한 사이였고 기현씨는 사고무친 신세나 다름없었기에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간신히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이번엔 돈이 문제였다. 중환자실 입원비는 200만원. 결국 집 보증금에 손을 댔다. 집주인한테 월세를 올리더라도 보증금 절반만 미리 달라고 부탁해 1000만원을 마련했다. 아버지는 더 이상을 일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기현씨는 아버지의 삶까지 걸머진 “2인분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돈에 쪼들리면서 애면글면 버티며 살았던 지난 9년에 관한 이야기다. 월세가 밀렸고 공과금이 쌓였다. 기현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아빠는 어질러진 일상 속에서 때때로 내게 크게 화를 냈고, 나는 보답으로 물건을 때려 부쉈다. 한 시간쯤 지나면 또 같이 밥을 먹었다.”

그렇게 아들은 ‘아빠의 아빠’가 되었다. 군 복무는 충북 음성에 있는 한 공장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공장에서 받은 돈으로 적금을 부었다. 훗날 그 돈으로 영화를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저혈당증으로 아빠는 다시 병원 신세를 졌다. 투석을 받아야 했다. 기현씨는 적금을 깨서 받은 750만원을 헐어 쓰면서 다시 몇 달을 버텼다.

퇴원한 아빠는 술에 의지했고 주야장천 막걸리를 마셨다.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면 길길이 날뛰었다. 기현씨는 생각했다. ‘평생 돈을 벌어 아빠 병원비로 다 바쳐야 하는 걸까.’ 삶은 엉망진창이었지만 부당한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기에 소집 해제 이후엔 시민단체에 들어갔다. 한데 단체의 대표는 돼먹지 못한 인간이었다. “단체 정관에서 함께하겠다고 선언한 ‘사회적 약자’는 좋은 일 하는 단체 대표의 명예를 위해 쓰이고 버려지는 무엇”이었다. 나가겠다고 하니 대표는 장난 섞인 어투로 말했다. “너 흙수저잖아? 어디서 누가 받아주겠니?”

단체를 나와서는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했다. 그리고 아빠는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했던 말을 하고 또 했다. 녹초가 돼 귀가하면 어디 다녀왔냐고 수십 번 물었다.

“아빠 치매라고! 정신 나갔다고!”
“쌍놈 새끼, 내가 알아서 살 테니까 너는 가만히 있어!”

병원비를 변통하려면 기초 생활 수급자가 돼야 했으나 쉽지 않았다. 주민센터 직원이 귀띔한 꼼수로 아빠는 수급자 타이틀을 거머쥐었는데 요양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1961년생인 아빠는 병원이 싫어하는 유형의 환자였다. 젊고, 치매가 있고, 알코올 중독자였으니까. 기현씨는 “병원은 보이지 않는 국경이 돼 철저한 입국 심사를 했다”며 “테러 위험을 감지하고 요주의 인물을 파악했다”고 썼다. 가까스로 병원을 찾았지만 이번엔 병원 입구에서 사달이 났다. 아빠는 집에 갈 거라고 몽니를 부렸다. 아들은 결국 아빠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지금 간병비만 300만원을 넘게 썼어! 그런데 왜 말을 안 들어! 왜!”



“나는 효자가 아니라 시민이다”

책에 담긴 아릿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옮기도록 하자. ‘아빠의…’를 ‘금주의 책’으로 꼽는 이유는 기구한 사연이 가득해서, 아직 20대인 저자가 대견해서가 아니다. 기현씨 역시 자신을 의젓한 청년이라고, 보기 드문 효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민과 동정은 기현씨의 9년을 ‘효심’이라는 단어 하나로 납작하고 앙상하게 만들어버린다. 기현씨는 거울을 보거나 동생이나 애인과 통화할 때 종종 말하곤 했다. “아빠 정말 죽이고 싶다.” 하지만 그의 본심이 그렇지 않았을 건 불문가지다.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말은) 정말 죽이고 싶다기보다는 죽음이 우리 앞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말에 가까웠다. 끝이 있으니 아직 더 해볼 용기를 가지라는 말이었다. 위악은 때때로 위안이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가난과 돌봄의 민낯이 어떻게 생겼는지 선명하게 드러낸다. 기현씨는 왜 아버지를 돌보며 살아왔을까. 자식 된 도리가 다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버지를 돌보는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약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내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족 관계 증명서’가 있듯이, 아버지와 나의 돌봄 기간을 증명하는 ‘시민 관계 증명서’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 관계 증명서는) 가족이라고 말해지기 전에 우리는 하나의 ‘사회’라고 선언한다. 나는 효자가 아니라 시민이다.”

딱딱하게 여겨지는 이야기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모여 있다. 고독사 실태를 전하면서 죽음마저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세태를 고발한 내용이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돌봄을 받지 못하고,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은 삶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는 현실도 되새겨보게 만든다.

책에서 굳이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분량이다. 고작 208쪽에서 끝나버리는 이야기는 안타까울 정도로 짧게 느껴진다. ‘아빠의…’는 세밑을 한 달여 앞두고서야 찾아온 ‘올해의 책’ 중 한 권이다. 기현씨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글솜씨를 가졌는지 알고 있을까. 그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아버지를 돌볼 수 있는지 물으려고 이 책을 썼다”고 적었다. 그는 현재 아버지가 자신의 미장 기술을 선보인 다큐멘터리 ‘1포 10㎏ 100개의 생애’를 만들고 있다.

조기현씨가 제작 중인 아버지의 미장 기술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1포 10kg 100개의 생애'의 한 장면. 이매진 제공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