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227㏊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든 고성·속초산불은 전신주 고압전선의 노후와 부실시공, 관리부실이 복합적으로 얽혀 일어난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고성경찰서는 지난 4월 발생한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과 관련해 한국전력 및 협력업체 관계자 등 9명에 대해 업무상 실화 혐의를 적용,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토대로 최초 발화점인 토성면 전신주 전선이 노후된 데다, 부실시공 및 관리 등 복합적인 문제로 강풍에 전선이 끊어지면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전선이 끊어져 산불 원인을 제공한 해당 전신주를 포함해 일대의 전신주 이전·교체 계획을 한전이 2017년 수립하고도 2년여간 내버려 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사유지 내에 있는 전신주를 계획대로 이전·교체했다면 부실시공으로 노후한 전선이 끊어져 산불로 이어지는 재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한국전력이 관리하는 전신주의 설치, 점검, 보수 등 업무상 실화에 무게를 두고 8개월간 집중적인 수사를 했다. 한전 속초·강릉지사와 한전 나주 본사, 강원본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지난 4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수사기록은 1만여 쪽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전기 배전과 관련한 안전 관리 문제점에 대해서는 유관기관에 통보했다. 또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법령과 제도 개선을 건의할 방침이다.
속초·고성 산불 이재민들은 8개월여 만에 내놓은 경찰의 수사 결과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노장현 고성산불 비상대책원장은 “사람이 죽고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인재인데 구속자 하나 없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검경이 한전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했다고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4월 4일 오후 7시17분쯤 시작된 산불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도로변 전신주의 고압전선이 끊어져 전기불꽃(아크)이 튀면서 발생했다. 이 불로 고성과 속초 일대 산림 1227㏊가 쑥대밭이 됐다. 축구장 1770개가 넘는 면적이다.
재산 피해액은 고성·속초 752억원, 강릉·동해 508억원, 인제 30억원 등 총 1291억원에 달하고 648가구 1366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산림과 주택 등을 복구하는 비용은 1967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춘천=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