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의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 게임업체 외주 일러스트 작가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퇴출됐다.
게임 제작업체 A스튜디오는 17일 공식 카페에 외주 일러스트 작가 B씨의 페미니즘지지 발언을 사과했다. 성우 김자연씨가 3년 전 페미니즘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가 게임업계에서 퇴출된 이른바 ‘넥슨 사태’ 후폭풍이다. B씨가 당시 김씨 지지 글을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이를 최근 모바일 게임 유저들이 찾아내 스튜디오에 항의했다.
A스튜디오는 “민감한 부분에 대해 신중하게 선정하지 못했다. 대단히 죄송스럽다”고 적었다. B씨는 이날 퇴출됐다. 그동안의 작업물도 교체됐다. A스튜디오는 “이용자 항의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게임업계 반페미니즘 관행, 하루 이틀 일 아니다
게임업계 내 반페미니즘은 뿌리깊은 관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력을 채용할 때 암암리에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했다. A스튜디오가 낸 사과문에서도 이같은 대목이 눈에 띈다. 이들은 “외주 전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가 리스트를 찾고 그들을 제외하고 섭외했다”고 썼다. 논란이 불거지자 A스튜디오는 “블랙리스트가 업계에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동안 논란을 바탕으로 내부적으로 찾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게임업계 내 이같은 문제를 끌어올린 인물이 김씨다. 그는 2016년 페미니즘 커뮤니티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 착용 사진을 올렸다가 곧장 넥슨 게임 ‘클로저스’ 제작에서 퇴출됐다. 그를 지지한 동료 모두 퇴출됐다. 6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 10월 이들 중 5명이 불공정행위를 당했다고 인정했다. 2018년에도 ‘소녀전선’ ‘소울워커’ ‘벽람항로’ 등에서 캐릭터와 일러스트가 잇따라 교체됐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였다.
정치권도 게임업계 내 반페미니즘 관행에 촉각을 세웠다.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는 18일 공식 트위터에 “게임업계가 페미니즘 자체를 반사회적 사상으로 낙인찍는 일부 이용자들의 주장에 동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며 “이번 일은 지금까지 그 실체를 밝힐 수 없었던 ‘블랙리스트’와 이에 의한 실질적 피해가 발생해 왔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적었다.
이어 “게임 문화도 바로 볼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을 반사회적으로 규정하려는 일부 게임 이용자들의 태도야말로 ‘게임은 우리만의 문화’라는 공허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젊은 남성으로 대표되던 게임 향유층도 여성으로, 중장년층으로, 다양한 국가와 민족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우리가 새 시대의 도래를 거부한다고 해서 세상이 기다려줄 리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 위원회는 한국 게임 산업과 문화의 미래를 위해, 게임업계에서의 사상검증을 처벌하고 보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며 “게임업계의 사상검증으로 피해를 입었던 여러분의 많은 제보를 부탁한다”고 적었다.
같은 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게임 업계 일러스트레이터·웹툰 작가 페미니스트 사상검증 블랙리스트 피해 복구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기업이 일부 남성 유저의 반발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문제”라며 “주 고객층인 남성 유저의 의견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2017년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고서에 의하면 모바일 게임 여성유저 60.3%, 남성은 59.3%로 오히려 여성 이용률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의 부당한 조치로 업무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경력은 하루 아침에 무산됐다. 남성중심 조직에서 젠더 감수성 결여, 인권 의식의 결여로 (퇴출) 조치됐다고 보여진다”라며 “우리는 사상의 자유, 발언의 자유, 업계 복귀와 직업 활동의 보장을 바란다”고 적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