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역 교육현장에서 일제 강점기 흔적 지우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친일인사가 노랫말·음률을 지은 교가를 바꾸고 욱일승천기를 떠올리게 하는 교표(校標) 바꾸기가 잇따른다.
18일 광주문흥초에 따르면 전교 학생회가 최근 교내 아침방송에서 학교의 상징 교표를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학생 공모 등을 통해 일본을 연상케 하는 교포를 바꾼다는 것이다. 일부 학급은 미술수업을 통해 제작된 교표를 예시하며 학생과 학부모 등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학생회는 “교표가 일본 전범기(욱일승천기)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선생님들로부터 들었다”며 “학생들이 학교의 상징을 만들어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아 공개모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흥초는 교직원을 대상으로도 공모를 한 뒤 이달 말 학생 중심의 심사단이 교표를 선정해 이를 학생 총투표로 확정한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원지 광주일고는 19일 오전 교내 강당에서 1953년부터 불린 ‘친일교가’를 대신할 새 교가 발표회를 갖는다. 경과보고에 이어 교내 합창단과 동문 관현악단의 연주로 열리는 발표회에는 동창회 임원과 학생, 학부모, 교직원 등이 참석한다. 새 교가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한 김종률씨와 교내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재학생 4명이 공동으로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김씨는 이 학교 졸업생이다.
새 교가 가사는 ‘맨발로 앞서나간 님들의 발자국/일구이구 이어받은 우리의 의지 바른길로 나아가는/피끓는 학생’이라는 대목이 포함돼 있다. 일구이구는 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한 1929년을 가리킨다. 그동안 광주일고 교가는 친일인사로 분류된 작곡가 이흥렬(1909~1980)이 만들어 친일잔재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씨는 일제강점기 친일 음악단체 ‘대화악단’과 ‘경성후생악단’에서 활동하며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가요를 연주·지휘했다.
이로 인해 광주일고 올해 2월 졸업식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씨가 작곡한 이 교가가 처음으로 제창되지 않았다. 학교 측이 재학생과 교직원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90%이상이 교가교체에 찬성했다.
광주일고는 친일잔재를 더 늦기 전에 털어내자는 공감대 속에서 새 교가 발표회를 열게 됐다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 5월 광주 광덕중·고와 대동고가 친일잔재 교가를 새 교가로 처음 교체했다. 숭일고와 금호중앙여고 등 13개 학교에서도 올해 말까지 ‘친일교가’ 교체작업을 마칠 예정이다.
광주시교육청은 친일인사가 작사 작곡한 교가와 욱일승천기 형상의 교포, 일본식 기념석물 등 교육현장에서 140여개 학교에서 317건의 친일잔재 의심사례를 확인하고 청산사업을 진행 중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 곳곳에서 친일 잔재 청산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어린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