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혁명 30주년·노란조끼 1주년… 유럽서 대규모 시위

입력 2019-11-17 17:06 수정 2019-11-17 17:10
수십만명의 시위대가 16일(현지시간)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인 체코 수도 프라하의 레트나 공원 인근 한 건물 지붕 위에서 여성 한 명이 체코 국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칠레, 볼리비아 등 남미 주요 국가와 홍콩에서 연일 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유럽 곳곳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체코에서는 비폭력 민주화운동으로 공산주의 정권을 몰아낸 ‘벨벳혁명’ 30주년을, 프랑스에서는 유류세 인상을 반대한 반정부 시위인 ‘노란 조끼 시위’ 1주년을 맞았다.

체코 시민 약 25만명(경찰 추산 20만명)이 벨벳혁명 30주년을 앞두고 16일(현지시간) 수도 프라하 레트나 공원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벨벳혁명은 1989년 11월 17일부터 12월 29일까지 체코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공산주의 통치 종식을 가져왔다. 평화적 시위로 피를 흘리지 않고 정권을 교체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부드러운 천인 ‘벨벳’에서 이름을 따왔다.

시위대는 이날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총리에게 오는 12월 31일까지 사업을 매각하거나 총리직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바비스 총리는 체코 대기업 애그로퍼트를 설립자로, 앞서 그가 소유한 기업은 200만 유로(약 22억원)의 유럽연합(EU) 보조금을 불법적으로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체코 경찰은 지난 4월 바비스 총리에게 사기 혐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그는 법무부 장관을 해임하고 측근을 앉혀 지난 6월에는 시위대 25만명이 광장에 쏟아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보조금 스캔들과 바비스 총리의 ‘이해충돌’ 문제를 지적한 EU 감사보고서가 유출되기도 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애그로퍼트는 2018년 한 해에 최소 8200만 유로(약 1067억원)의 EU 보조금을 타낸 것으로 알려졌고, 체코 납세자들이 이를 상환할 처지에 처했다. BBC방송은 최근 검찰이 바비스 총리에 대한 형사사건을 철회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사임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30년 전 벨벳혁명 당시의 슬로건 “우리가 이곳에 있다”를 외쳤다. 반(反)바비스 총리 시위를 조직한 ‘민주주의를 위한 수백만의 순간’(Million Moments for Democracy)의 부회장 벤자민 롤은 로이터통신에 “몇몇 정치인들은 왜 우리가 이곳에 있는지 모르고, 일부는 주말을 망친다고 생각한다”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AFP연합뉴스

프랑스에서는 노란 조끼 시위 1주년을 맞아 이날 파리·마르세유·몽펠리에 등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벌여졌다. 노란 조끼 시위는 지난해 12월 17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 발표에 반대하면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다. 시위 참가자들이 운전자가 사고를 대비해 차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는 형광 노란 조끼를 입고 나와 노란 조끼 시위라는 명칭이 붙었다.

시위대는 이날 파리 일부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하려 했지만 경찰이 막아서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경찰은 시위대 해산을 위해 최루탄을 쐈다. 일부 시위대는 은행 유리창을 부수고, 도로변에 주차된 차와 쓰레기통에 불을 지르며 경찰과 대치했다. 몽펠리에에서는 시위대 1500여명이 도심에서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가 여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전진하는 공화국) 국회의원의 지역구 사무실을 습격해 기물이 파손되기도 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시위 주최 측은 전국에서 약 4만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내무부는 시위에 2만8600명 정도가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오후 8시까지 파리에서만 147명을 체포했으며 이 가운데 129명이 구속됐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16~17일 주말 동안 전국에서 200여개의 시위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