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대기오염으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한 인도에서 산소카페가 등장해 이목을 끌고 있다. 산소 테라피는 그 자체로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지만, 인도 정부가 수년간 지속돼온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등 책임을 방관하면서 민간에서 이 같은 자구책이 나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인디아투데이 등 현지매체들은 17일 인도 뉴델리 시내 대형 쇼핑몰에서 정화된 산소를 판매하는 산소바(oxygen bar) ‘옥시 퓨어’를 보도했다. 이곳에서는 고객들이 약 299루피(약 4900원)을 내고 15분간 신선한 산소를 마실 수 있다. 라벤더, 유칼립투스, 페퍼민트, 계피 등 7가지 종류 향에 따라 가격은 조금씩 달라진다.
호텔리어 출신이던 아리아비르 쿠마르는 지난 5월 이 바를 개장했다. 그는 “고객들이 ‘이제 신선한 공기를 사야 하냐?’라고 묻는다”며 “나는 ‘20년 전에 물을 안 사먹었지만 이제는 사먹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뭄바이와 방갈로르 등에 분점을 낼 계획이다.
고객인 비크람 아이예르(25)는 “정화된 산소가 이곳에서 떨어진 사기를 올려준다”고 말했다. 뉴델리에 사는 우크라이나 출신 리사 드위베디는 뉴욕타임스(NYT)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눈이 따갑고 콧물이나고 목이 부어서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심리적인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15분간만이라도 순수한 산소를 흡입하게 돼 기분이 좋다”라고 덧붙였다.
뉴델리에서는 2015년에도 이와 비슷한 산소 카페가 문을 열었지만, 곧 폐업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 산소바가 또 등장한 것은 대기 오염이 나아질 기미가 없는 탓이다. 특히 뉴델리 인근에서는 농부들이 11월 중·하순 시작되는 파종기까지 농작물 찌꺼기를 태우면서 엄청난 연기와 재가 발생한다. 낡은 경유차 매연, 난방·취사용 폐자재 소각 연기, 공사먼지 등이 더해지면서 뉴델리의 겨울 대기는 크게 나빠진다.
뉴델리는 이달 들어 대기질지수(AQI)가 999를 넘는 지역이 나오는 등 대기오염 상태가 극도로 나쁘다. AQI가 999라는 것은 사실상 오염 정도의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초미세먼지도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의 안전 기준은 25㎍/㎥보다 수십배 높다. 극심한 대기 오염으로 시야가 가린 탓에 항공편이 결국 항로를 우회하거나 연기·취소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산소 테라피의 효과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짧은 순간 고농축 산소를 마시는 게 건강에 별 효과가 없고, 과학적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결국 대기오염을 방치한 정부의 무책임에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NYT는 “공기는 아이들에게 뇌손상을 유발할 정도로 나빠졌음에도 일부 중앙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인도에서 수년간 지속돼온 이 문제를 인정하지 않거나 심각성을 최소화했다”고 지적했다. 뉴델리 일부 지역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WHO 안전기준보다 60배 높음에도 장관이 “당근을 먹어야 한다”고 하거나, 일부 의원들은 농작물을 태우는 농부들을 막는 대신에 힌두교 비의 신에게 구원을 기원하자고 말했다고 NYT는 덧붙였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